[진료실 풍경] 친절한 의사

입력 2026-05-20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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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은 참 친절하시네요.” 진료실에서 종종 듣는 말이다. 그런데 같은 진료를 해도 어떤 날은 “불친절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의사의 태도는 같았을지라도, 환자와 보호자가 느끼는 친절은 제각각이다.

그 기준은 의외로 단순하다. 환자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면 친절한 의사고, 들어주지 않으면 불친절한 의사다. 하지만 의료는 서비스업이면서도 동시에 전문 영역이다. 의사는 환자가 ‘원하는 것’을 해주는 사람이 아니라, 환자에게 ‘필요한 것’을 해주는 사람이다.

가끔 환자들이 무리한 요구를 한다. 오남용 위험이 높은 약을 달라거나, 부적절한 진단서를 써 달라고 한다. “환자가 원하는데 왜 안 해주느냐”고 항의하기도 한다. 그러나 병원은 슈퍼마켓이 아니다. 환자가 달라는 대로 약을 내어주면, 그건 의사가 처방하는 게 아니라 환자가 처방하는 것이다. 그건 의료가 아니라 장사이다.

진단서도 마찬가지다. “직장 다니기 싫으니 휴직 진단서를 써 달라”는 요구를 받으면 이렇게 말한다. “그건 진단서가 아니라 사직서가 필요하신 겁니다. 빨리 사직서를 내세요. 그래야 일하고 싶은 사람이 새로 들어올 수 있습니다.” 그 말을 들은 환자는 나를 예의 없고 불친절한 의사라 여길 것이다. 포털 사이트 평점도 좋게 남기지 않을 것이다.

최근엔 장애진단서를 두고 보호자와 언성을 높인 일도 있었다. 기준에 맞지 않아 다투기 싫어서 대학병원에서 정밀 평가를 받으시라고 안내했지만, 가족이 번갈아 와 같은 요구를 반복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반복되는 설명 끝에 결국 “저는 친절한 의사가 아닙니다. 친절한 의사를 찾아가세요.” “동사무소 직원은 다 해준다는데 왜 안 해주냐”는 말엔 이렇게 답했다. “그럼 동사무소 가서 진단서 떼 달라고 하십시오.”

거절했던 많은 요구 중, 아직도 마음 한구석에 남은 환자가 있다. 젊은 지적장애 환자였다. “자기가 지적장애가 아니라는 진단서를 써 달라”며 찾아왔다. 이유를 묻자, 장애인 작업장에서 일하는데 사람들이 자신을 함부로 하고 무시한다고 했다. “일반 공장에서 일하고 싶은데, 그러려면 ‘지적장애가 아니다’는 진단서가 필요할 것 같았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들으며 마음이 저려왔다. 진단서를 써줄 수는 없었지만, 대신 “당신은 소중한 사람입니다. 힘내세요” 하고 응원해 주었다

의료 현장은 친절보다 과학이 필요한 곳이다. 또한 사회가 좀 더 따뜻했으면 한다. 장애와 질환이 놀림이나 차별의 대상이 아니라, 이해와 연민의 시선으로 바라 보는 따뜻한 세상이 오기를 나는 간절히 소망한다 .

박경신 서산 굿모닝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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