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비 뛰는데 소비 꺾여…화훼농가, 생존 갈림길에 서다

입력 2026-05-08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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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 전쟁발 원자재 폭등에 수입산 저가 공세까지…"꽃 팔아도 남는 게 없다"

▲인천 남동구 구월동의 화원에서 시민들이 카네이션을 구입하고 있다. (뉴시스)
▲인천 남동구 구월동의 화원에서 시민들이 카네이션을 구입하고 있다. (뉴시스)

5월 가정의 달을 맞았지만, 전국 화훼농가와 꽃집의 표정은 어둡기만 하다.

어버이날과 스승의 날이 몰려 있어 한 해 최대 성수기로 꼽히던 5월이 이제는 적자를 걱정해야 하는 달로 바뀌고 있다. 중동 전쟁 장기화에 따른 생산비 급등, 저가 수입 꽃의 시장 잠식, 소비 문화의 변화가 겹치면서 국내 화훼 산업이 뿌리째 흔들리는 모양새다.

4분의 1 토막 난 시장

▲농림축산식품부 통계. (사진=AI 생성)
▲농림축산식품부 통계. (사진=AI 생성)

화훼유통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지난달 27일부터 이달 7일까지 서울 양재동 화훼공판장에서 경매된 카네이션(절화 기준)은 총 3만1625단으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5만6181단) 대비 43.7% 급감한 수치다.

카네이션 산업의 쇠퇴는 장기 통계에서도 고스란히 나타난다. 농림축산식품부의 ‘2024 화훼재배현황’에 따르면 2005년 1억2000만 본에 달했던 카네이션 판매량은 2024년 1960만 본으로 83.7% 폭락했다. 같은 기간 판매액 역시 326억원에서 72억원으로 77.9% 줄어들며 시장 규모가 4분의 1 수준으로 축소됐다.

꽃 소비가 줄어든 배경에는 경기 침체와 소비 패턴의 변화가 자리 잡고 있다. 꽃 대신 상품권이나 현금, 건강식품 같은 실용적 선물을 택하는 소비자가 늘면서, 꽃집들은 물량을 대폭 줄이고도 재고 부담에 시달리고 있다.

중동전쟁 불똥...비료, 기름, 포장재 '트리플 폭등'

▲2일 만남의광장 주유소에 유가정보가 나와있다. 중동발 전쟁 여파로 주유소 기름값이 오르고 있다. 김예연 인턴기자 kimye@
▲2일 만남의광장 주유소에 유가정보가 나와있다. 중동발 전쟁 여파로 주유소 기름값이 오르고 있다. 김예연 인턴기자 kimye@

소비 감소만이 문제가 아니다. 중동전쟁이 촉발한 원자재 가격 급등이 화훼농가의 경영을 직격하고 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2026년 4월 기준 중동의 요소 수출 가격은 t(톤)당 670달러로, 전년 같은 달보다 172.3% 올랐다. 비료 원료의 상당 부분을 수입에 의존하는 한국 농가로서는 피할 수 없는 타격이다.

온실 난방에 쓰이는 기름값 부담도 농가를 옥죄고 있다. 지난달 석유류 물가가 전년 대비 21.9% 오르면서 난방비 비중이 높은 화훼농가의 시름이 깊어졌다. 이에 더해 흙과 배양토 등 필수 자재의 운송비까지 덩달아 뛰면서 농가들의 지출이 급증했다.

심지어 화훼 재배에 쓰이는 플라스틱 화분과 포장용 비닐의 원재료인 폴리에틸렌(PE) 가격도 폭등했다. 한국농업용PO필름연구조합에 따르면 폴리에틸렌 가격은 3월 초 기준 1kg당 2290원으로, 중동전쟁 직전인 2월(1390원)보다 약 65% 올랐다. 게다가 꽃바구니에 쓰이는 플라스틱과 보리사초 등 장식용 소재 가격까지 함께 뛰면서, 꽃 한 바구니를 만드는 데 드는 비용이 크게 늘었다.

몰려오는 저가 수입 꽃

▲어버이날을 하루 앞둔 7일 서울 중구 남대문꽃시장에 중국산 카네이션이 전시돼 있다. 신태현 기자 holjjak@
▲어버이날을 하루 앞둔 7일 서울 중구 남대문꽃시장에 중국산 카네이션이 전시돼 있다. 신태현 기자 holjjak@

이처럼 생산비는 치솟는데, 판매가를 마음대로 올릴 수도 없는 것이 꽃 시장의 현실이다. 양재 화훼공판장에서 30년 넘게 중도매를 해온 한 상인은 뉴스핌과의 인터뷰에서 "포장재와 물류비가 체감상 20~30%는 오른 것 같다"면서도 "온라인과 SNS에서 가격 비교가 즉각 이뤄지다 보니 도매가 인상분을 소비자에게 전가하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카네이션 혼합 한 단의 평균 가격은 지난해 5월 5946원에서 올해 9351원으로 올랐지만, 소비자의 심리적 한계선 때문에 판매가 인상은 사실상 제한적이다.

설상가상으로 저가 수입 꽃의 물량 공세가 국내 농가의 숨통을 더욱 죄고 있다. 농식품부 통계에 따르면 2024년 기준 카네이션 수입량은 2298t으로 8년 전인 2016년(414t)보다 5.6배 급증했다. 수입산 카네이션은 대부분 콜롬비아와 중국에서 들어오며, 가격은 국산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저렴한 인건비를 앞세운 수입 물량이 국내 도매시장을 빠르게 잠식하면서, 품질로 승부하려는 국내 농가도 가격 경쟁에서 버티기 어려운 구조가 굳어지고 있다.

20년째 내리막길 걷는 꽃 농사

▲19일 경기 군포시 철쭉동산 일대에서 열린 ‘2026 군포철쭉축제’를 찾은 상춘객들이 봄의 절정을 만끽하고 있다. 신태현 기자 holjjak@
▲19일 경기 군포시 철쭉동산 일대에서 열린 ‘2026 군포철쭉축제’를 찾은 상춘객들이 봄의 절정을 만끽하고 있다. 신태현 기자 holjjak@

이 같은 복합 위기 속에서 결국 꽃 농사를 접는 농가가 속출하고 있다. 2005년 1만2859호에 달했던 재배 농가 수는 2024년 기준 7079호로 절반 가까이 감소했다.

현장의 위기감도 심각하다. 한경표 음성군 화훼생산자협의회장은 충청매일과의 인터뷰에서 "가정의 달 대목이라는 말은 이제 옛말"이라며 "꽃 소비 감소와 생산비 부담이 동시에 겹치는 데다 수입산 저가 꽃까지 시장을 잠식하면서 농가의 생존 기반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고 호소했다.

국내 화훼 산업의 위축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농식품부 통계에 따르면 1인당 연간 화훼 소비액은 2005년 2만870원에서 2024년 1만3432원으로 15년 새 35% 감소했다. 여기에 가파른 물가 상승률까지 감안하면, 화훼농가가 체감하는 실질적인 타격은 훨씬 클 것으로 보인다.

긴급 수혈 나선 지자체, 남은 과제는 근본적 체질 개선

▲농림축산식품부의 농업용 면세유 구입비 지원사업. (사진제공=농림축산식품부)
▲농림축산식품부의 농업용 면세유 구입비 지원사업. (사진제공=농림축산식품부)

정부는 비료 가격 인상분에 대한 농가 보조, 면세유 유가 연동 보조금 지원, 필수농자재지원법 등으로 대응하고 있다. 경상북도는 무기질 비료 가격 인상분의 최대 80%를 지원하기 위해 69억원을 긴급 투입했고, 김해시 등 일부 지자체도 추경 편성을 통한 긴급 지원책을 마련 중이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단기 보조금만으로는 구조적 위기를 막기 어렵다는 목소리가 높다. 에너지 체계 전환, 수입 의존도 완화, 꽃 소비 촉진을 위한 중장기 대책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가정의 달 5월, 카네이션 한 송이에 담긴 감사의 마음은 여전하지만, 그 꽃을 키우고 유통하는 사람들의 현실은 어느 때보다 녹록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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