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공급망 '신냉전' 전장 변질⋯전략적 투자 '골든타임' 상실 우려

첨단 제조업의 혈맥인 소재·부품·장비(소부장) 산업이 인공지능(AI)과 반도체 슈퍼사이클이라는 ‘기회의 문’에 들어 섰지만, 정부의 지원 시계는 오히려 느려지고 있다. 공급망 위기 때 쏟아부었던 화력은 이제 완만한 관성으로 바뀌었고, 현장에서는 전략적 투자의 적기를 놓칠 수 있다는 위기론이 터져 나온다. 소부장에 대한 전략적 투자를 다시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5일 산업통상부 자료에 따르면 소부장 기업 지원 예산은 2020년 8960억원에서 2021년 1조1913억원으로 33% 급증한 이후 2022년 1조2676억원(+6.4%), 2023년 1조3787억원(+8.8%), 2024년 1조4130억원(+2.5%), 2025년 1조4839억원(+5%)으로 증가했다. 초기 두 자릿수 증가세에서 최근 한 자릿수로 둔화되는 흐름이다.
이 같은 흐름은 예산이 늘고 있음에도 실제 지원 강도는 점차 약해지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2020년 예산 규모 자체가 작아 증가율이 크게 보이는 측면이 있지만, 이를 감안하더라도 반도체·디스플레이·자동차·배터리·방산 등 소부장 기반 산업이 빠르게 성장하는 상황에서 지원 규모를 보다 적극적으로 확대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2020년 이후 예산이 크게 늘어난 배경에는 일본의 수출 규제 조치가 있었던 것으로 관측된다. 2019년 일본이 한국을 수출심사 우대국(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면서 포토레지스트, 고순도 불화수소, 불화 폴리이미드 등 반도체 핵심 소재 수급에 차질이 발생했다. 당시 국내 반도체 산업은 일본 의존도가 높아 생산 차질 우려까지 제기됐고, 이를 계기로 정부는 소부장 국산화와 산업 육성에 본격적으로 나선 바 있다.
글로벌 공급망이 ‘신냉전’의 전장으로 변질되면서, 소부장 자립은 이제 선택이 아닌 생존의 마지노선이 됐다. 미·중 갈등의 격화와 보호무역주의의 파고가 상시적 변수가 된 지금, 핵심 소재·부품의 국산화는 단순한 수입 대체가 아니라 국가 기술 주권을 지키는 선제적 방어막이 되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시장 상황도 변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반도체 업황이 회복되며 올해는 본격적인 슈퍼사이클에 진입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소자 기업들은 대규모 수익을 기록하고 있지만, 소부장 기업들은 아직 실적 개선이 제한적인 상황이다. 제조사들의 신규 팹 투자 이후 실제 장비 발주로 이어지기까지 시차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향후 소부장 투자 사이클이 본격화되면 소부장 기업들도 수혜를 본격적으로 반영할 것으로 전망된다. 글로벌 반도체 산업은 미국, 대만, 중국 등 주요 국가들이 각기 다른 강점을 바탕으로 경쟁하는 다극 구도로 재편되고 있다. 선행 기술 확보를 주도하는 소부장 역할이 더욱 중요해질 것이라는 분석이다.
정부는 이러한 지원이 일정 부분 성과를 내고 있다고 보고 있다. 실제로 2020년부터 소부장 예산은 연구개발(R&D)을 중심으로 확대되고 있으며, 테스트베드 구축과 인프라 투자도 병행되고 있다. 그 결과 2024년 기준 국산화 성공 사례는 949건, 고용 증가율은 12.6%, 매출 증가 기업 수는 338건으로 집계됐다.
업계에서는 시장 환경 변화 속도를 고려하면 한시적으로라도 지원 규모를 더욱 확대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소부장 산업이 단순 지원 대상이 아니라 국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 축으로 부상한 만큼, 보다 적극적인 투자와 정책적 뒷받침이 요구된다는 지적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