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분양 주택과 공공임대 주택이 한 울타리에 거주하는 '혼합주택단지' 내에서 임차인들이 관리비는 동일하게 부담하면서도 주요 의사결정에서는 소외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갈등의 핵심인 관리비 집행과 커뮤니티 시설 이용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임차인에게 실질적인 관리 참여 권한을 부여하는 법적 장치 마련이 시급하다는 제언이다.
서울주택도시개발공사(SH)는 29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임차인 권익 보호와 갈등 해소를 위한 혼합주택단지 제도 개선 토론회'를 열고 실효성 있는 정책 대안을 논의했다. 이번 토론회는 안태준·조정식·복기왕·윤종군·이연희·정준호 의원이 공동 주최하고 SH와 국토교통부, 한국토지주택공사(LH), 경기주택도시공사(GH)가 공동 주관했다.
첫 번째 발제자로 나선 오정석 SH 도시연구원 연구위원은 "2003년 서울시의회가 소셜믹스 논의를 시작한 배경은 과거 영구임대 전용 단지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불식시키고 공공임대주택을 원활히 확보하기 위함이었다"며 현재 서울시 혼합단지는 전체의 약 60%를 차지할 정도로 보편화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물리적인 혼합에 비해 관리 제도는 따라오지 못하고 있다는 게 오 위원의 분석이다. 그는 "현행법상 분양은 공동주택관리법, 임대는 공공주택특별법으로 이원화돼 있다 보니 현장에서의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오 위원은 단지 내 갈등의 가장 구체적인 사례로 '잡수입(광고 수익, 재활용품 매각 대금 등) 사용' 문제를 꼽았다. 그는 "소유자는 자산 가치를 높이는 데 돈을 쓰고 싶어 하고, 임차인은 관리비를 줄이는 데 쓰고 싶어 한다"며 "법에 명시되지 않은 결정 사항에 대해 입주자대표회의(분양 측)가 일방적으로 결정하는 구조가 가장 큰 문제"라고 비판했다. 또 커뮤니티 시설 이용 제한이나 관리업체 선정 과정에서의 임차인 소외도 주요한 갈등 원인으로 분석됐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오 위원은 △의사결정 시 임대 면적뿐 아니라 '세대수 비율' 고려 △공동주택관리법상 '사용자' 정의에 임차인 포함 △법제화 전 '규제 샌드박스' 형태의 공동 관리 시범사업 추진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두 번째 발제자인 은난순 가톨릭대학교 교수는 관리 체계의 '단권화'를 해법으로 제시했다. 은 교수는 "지난 10여 년간의 현장 조사 결과 하나의 단지임에도 관리규약이 두 개로 운영되어 행정적 낭비와 거주민 간 심리적 격차가 발생하고 있다"며 "진정한 사회적 혼합을 위해 '하나의 단지, 하나의 관리규약' 원칙이 반드시 정립돼야 한다"고 말했다.
은 교수는 구체적인 설계안으로 △가칭 '공동주택대표회의' 의결 기구 신설 △임대사업자의 결정 권한을 해당 단지 임차인대표회의에 대폭 위임하는 법적 근거 마련 △임차인 대표에게도 입주자 대표와 동일한 수준의 책임(범죄경력 조회 등) 부여 등을 제안했다.
이어진 토론에서 최재혁 LH 주택단지관리팀장은 "현재 공동주택관리법상 '사용자' 규정을 보면 임차인을 명시적으로 제외하거나 배제하는 문구들이 존재한다"며 "이러한 독소 조항들을 삭제하거나 동별 대표자 및 선거관리위원회 관련 개별 조항에 임차인을 명확히 포함하는 원포인트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최 팀장은 일부 혼합단지 내에서 발생하는 임차인에 대한 불합리한 차별 실태를 지적하며 강력한 제도적 제재를 촉구했다. 그는 "지금 입주자대표회의에서 특별한 이유 없이 임대주택 임차인을 차별하고 배제하는 상황이 있다"며 "전기차 충전 시설을 못 쓰게 한다든가 주차장, 헬스장을 못 쓰게 하거나 주차장 차량 등록 횟수를 제한하는 등의 부분들"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런 부분은 법 개정을 통해서도 가능하겠지만, 우선 지자체 관리규약 준칙에 '임차인 부당 차별 금지 규정'을 신설하거나 공동주택관리법에 이를 명시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영화 변호사는 "2024년부터 시행된 층간소음관리위원회에 임차인 대표가 포함된 것은 의미 있는 선례"라면서 "소유권에 직접적인 타격을 주지 않는 비용 관련 사안부터 임차인의 참여 범위를 야금야금 넓혀가는 입법 전략이 현실적"이라고 진단했다.
김영아 국토교통부 주택건설운영과장은 "공동주택관리법이 소유자의 자산 관리를 목적으로 출발해 임차인의 권한을 담는 데 근원적인 제한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라면서도 "이제는 아파트 생활에서 발생하는 여러 문제를 해결하는 방향으로 법령의 패러다임이 변화해야 할 시점"이라고 분석했다. 특히 그는 법 개정 전이라도 현장에서 즉각 실행 가능한 대안으로 지자체의 역할을 주문하며 "전국 2만여 개 단지의 사정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하나의 공적 규율만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며 "시도별 관리규약 준칙을 통해 단지마다 자기 특성을 반영한 해결책을 선제적으로 마련해달라"고 당부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