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 사는 곳 어디에나 이순이 필요하겠지만, 정말 필요한 곳은 바로 병원이다. 이곳에는 건강한 사람들의 긍정적인 말보다 아픈 환자들의 부정적인 말과 불안, 두려움이 늘 자리 잡고 있다. 그러기에 의사는 귀는 물론이고 입도 순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의사·환자 간의 관계(Doctor-patient relationship)는 유리처럼 쉽게 금이 가 질병 치료에 나쁜 영향을 미치게 된다.
소아청소년과는 울음소리로 하루를 시작하고 울음소리로 하루를 마무리한다. 어른들의 울음은 감정표현이고, 아이들의 울음은 의사표현이다. 초보 의사일 때는 몰랐다. 당연히 적응하기도 힘들었다.
진료실에서 증상을 자세히 말하고 진찰에 협조를 잘해도 오진 가능성이 있는데, 환자가 울고 발버둥을 치면 어떨까. 어디서부터 손을 써야할지 막막해진다. 짜증도 난다. 그런 나날들이 1년, 5년, 10년이 지나 30년이 훨씬 넘은 지금에야 진정한 ‘이순’이 되었다.
울음소리를 듣고 배가 고픈지 심심한지 기저귀가 젖었는지를 아는 엄마처럼, 울음소리를 듣고 아픈 건지 무서운 건지 괜찮은 것인지를 소아청소년과 의사는 안다.
울음소리를 구별할 수 있으면 아이들 진단의 반은 끝낸 것과 같다. 모른다면? 긴 시간과 많은 돈을 들여 피검사, 엑스레이(X-ray), 초음파, CT(컴퓨터단층촬영)나 MRI(자기공명영상)에 의존해야 한다. 필요하면 의대선발 인원을 늘려야 하지만, 당장 필수의료를 담당하는 의사들이 오랜 기간 쌓아온 경험을 포기하는 현실을 어찌할지 묻고 싶다.
유인철 안산유소아청소년과 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