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채널 화면으로 마주하는 투쟁과 예술… 홍진훤 다큐 '오, 발렌타인' [시네마천국]

입력 2026-03-14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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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오, 발렌타인!' 포스터. (사진제공=(주)시네마달)
▲다큐멘터리 '오, 발렌타인!' 포스터. (사진제공=(주)시네마달)
이번 주말, 뻔한 상업 영화 공식에서 벗어나 완전히 새로운 시각적·청각적 자극을 원한다면 11일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오, 발렌타인'을 주목해 볼 만하다. 한국 노동사의 아픈 기억을 독특한 미학적 형식으로 풀어낸 이 작품은 관객에게 단순한 관람을 넘어 적극적인 사유의 시간을 제안한다.

영화는 2004년 현대중공업 하청 노동자였던 박일수 열사와 함께 투쟁했던 두 사람, 조성웅과 우창수의 증언을 깊숙이 파고든다. 공장과 도시를 떠난 두 주인공은 시와 노래라는 각자의 예술적 언어를 통해 과거 패배했던 운동의 기억을 오늘날로 끄집어낸다. 작품은 박일수 열사의 기록과 두 혁명가의 현재를 묵직하게 교차시키며, 자본주의와 결코 화해할 수 없는 위태로운 삶의 이면과 새로운 혁명의 가능성을 날카롭게 묻는다. 특히 이데올로기의 프로파간다를 위해 생산되던 민중 예술이 오늘날의 자리에서 어떤 형식으로 다시 피어날 수 있는지 탐구하는 과정은 진한 여운을 남긴다.

▲다큐멘터리 '오, 발렌타인!' 스틸. (사진제공=(주)시네마달)
▲다큐멘터리 '오, 발렌타인!' 스틸. (사진제공=(주)시네마달)
이 영화가 가진 가장 강력한 무기는 어디서도 본 적 없는 2채널 화면의 독창적인 시청각적 체험이다. 자본화된 거대한 운동의 상징 위에 놓인 두 주인공의 고백은 스크린 위에서 쉴 새 없이 충돌하고 겹쳐진다. 과거 세 사람이 함께 뜨겁게 연대했던 울산의 공장 지대 풍경과 현재 그들을 둘러싼 화천·창녕의 복잡하고 낯선 풍경이 두 개의 화면을 통해 동시에 펼쳐진다. 여기에 여러 음성이 섞인 중첩된 사운드가 더해지며 과거와 현재는 마치 피할 수 없는 하나의 징후처럼 얽혀든다. 감독은 친절한 설명을 배제한 채 관객 스스로 화면 사이의 빈 공간을 채워 넣고 해석하는 주체가 되기를 권유한다.

국립현대미술관(MMCA) '올해의 작가상 2026'에 노미네이트되며 예술성을 앞서 증명한 홍진훤 감독은 첫 극장 개봉작인 이번 영화에서도 특유의 전위적인 감각을 뽐낸다. 영상과 사진, 프로그래밍 등 매체의 경계를 허물며 긴장감을 탐구해 온 그의 실험적 형식은 스크린 위에서 한국 노동 운동사의 결을 더욱 깊고 넓게 확장해 낸다.

어떤 희망도 발견하기 어려워 보이는 시대, 패배의 자리에서 피어난 예술적 혁명이 스크린 위에서 어떻게 조우하는지 확인해 볼 수 있는 특별한 주말 나들이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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