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은 역대급이라는데, 내 지갑은 왜?"…한국 경제 덮친 '붐세션'의 역설 [이슈크래커]

입력 2026-02-20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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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산둥성 칭다오 항구 컨테이너 터미널에 쌓여 있는 컨테이너들. (칭다오/AFP연합뉴스)
▲중국 산둥성 칭다오 항구 컨테이너 터미널에 쌓여 있는 컨테이너들. (칭다오/AFP연합뉴스)
최근 뉴스를 보면 고개가 갸웃거려질 때가 많습니다. 한쪽에서는 "반도체 수출이 역대 최대치를 경신했다", "경제 성장률이 선방하고 있다"는 긍정적인 지표가 쏟아지는데, 막상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장바구니 물가와 한 달 생활비를 계산해 보면 한숨부터 나오기 때문입니다. 나라 경제 전체의 파이는 커진다는데, 평범한 사람들의 살림살이는 왜 제자리걸음이거나 오히려 뒷걸음질 치고 있는 걸까요?

최근 경제계에서는 이런 기이한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붐세션(Boomcession)’이라는 단어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호황 속의 침체, '붐세션'은 도대체 무슨 뜻?

(출처=구글 제미나이 생성 이미지)
(출처=구글 제미나이 생성 이미지)
붐세션은 경제적 호황을 뜻하는 '붐(Boom)'과 경기 침체를 뜻하는 '리세션(Recession)'을 하나로 합친 신조어입니다. 국가 전체의 거시적인 경제 지표나 수출 성적표는 쑥쑥 성장하고 있는데, 정작 일반 가계나 서민들이 피부로 느끼는 실물 경기는 꽁꽁 얼어붙어 있는 모순적인 상황을 가리킵니다.

이 단어는 원래 미국에서 먼저 유행하기 시작했습니다. 미국 역시 주식 시장이 연일 최고치를 경신하고 경제 지표가 탄탄하게 나오지만, 인플레이션과 부채에 짓눌린 일반 국민들은 극심한 생활고를 호소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경제 통계상으로는 펄펄 끓는 '온탕'인데, 내 지갑 사정은 꽁꽁 언 '냉탕'인 극단적인 양극화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한국 경제는 전형적인 붐세션 상황?

(출처=구글 제미나이 생성 이미지)
(출처=구글 제미나이 생성 이미지)
그렇습니다. 화려한 '숫자'가 만들어낸 착시 현상을 걷어내면 현실이 뚜렷하게 보입니다. 최근 발표된 1월 수출 지표를 보면, 인공지능 열풍을 탄 반도체 수출이 전년 동기 대비 130% 이상 폭증하며 우리나라 전체 수출을 이끌고 있습니다.

하지만 반도체라는 단일 품목을 빼고 우리 주변을 둘러보면 지표는 곤두박질칩니다. 고물가와 고금리가 길어지면서 사람들은 지갑을 굳게 닫았고, 내수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지표인 소매판매액 지수는 계속해서 마이너스를 기록 중입니다. 동네 골목상권과 자영업자들의 폐업률은 치솟고 있으며, 건설업이나 전통적인 제조업 현장 역시 일거리가 줄어들어 서민들은 밥상물가 걱정에 고용 불안까지 떠안게 되었습니다. 반도체 수출 호조가 경제 전반의 침체를 아슬아슬하게 가려주고 있는 형국입니다.

수출 대박으로 번 돈은 다 어디로?

▲인공지능(AI) 반도체 이미지. (게티이미지뱅크)
▲인공지능(AI) 반도체 이미지. (게티이미지뱅크)
가장 큰 이유는 시중에 도는 '돈의 길'이 과거와 완전히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전 세계적인 AI 열풍 속에 막대한 투자금과 기업의 이익이 소수의 첨단 기술 분야로만 블랙홀처럼 빨려 들어가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대기업이 수출로 돈을 벌면, 그 돈이 수많은 하청업체와 협력업체를 거쳐 일반 직장인의 월급 인상과 골목상권 소비로 이어지던 이른바 '낙수효과'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 연결고리가 사실상 끊어졌습니다.

게다가 첨단 기술 기업들은 성장을 하더라도 과거 제조업처럼 사람을 대규모로 뽑지 않습니다. 오히려 AI를 적극 도입해 인건비 등 비용을 줄이고 효율성을 높이는 데 사활을 걸고 있죠. 양질의 일자리는 줄어들고, 빚을 내서 이자를 갚아야 하는 서민들의 이자 부담은 여전히 높다 보니 소비할 여력 자체가 사라진 것입니다.

결국 소수의 첨단 산업과 자산가들만 위로 치솟고, 대다수 서민 경제는 아래로 꺾이는 'K자형' 양극화 궤적이 갈수록 굳어지고 있습니다.

이런 현상이 계속되면 어떻게 되나?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서 시민들이 장을 보고 있다. 신태현 기자 holjjak@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서 시민들이 장을 보고 있다. 신태현 기자 holjjak@
붐세션이 장기화되면 경제의 기초 체력 자체가 약해집니다. 내수 소비가 죽어버리면 자영업자와 내수 기업이 무너지고, 이는 다시 일자리 감소와 가계 소득 하락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에 빠지게 됩니다. 또한 대외 의존도가 비정상적으로 높아져, 글로벌 경제에 작은 충격만 와도 나라 경제 전체가 크게 흔들릴 위험이 있습니다.

화려한 수출 성적표에 안주할 때가 아닙니다. 차갑게 식어버린 아랫목을 데워줄 수 있도록, 고금리·고물가에 취약해진 계층을 정밀하게 타격해 지원하고 얼어붙은 내수를 살릴 수 있는 세밀한 경제 처방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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