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와 이제 시원한 거 같아”
단체 ‘뇌손상’의 단계까지 온 지독하고 지독한 폭염입니다. 낮 기온이 37~39도를 찍는 극한 더위 속 30도대 초반이 상대적으로 선선하게 느껴질 지경인데요.
이번 폭염의 중심은 처음 영남을 비롯한 동쪽 지역에 있었습니다. 7월 말에는 서풍과 북서풍이 산맥을 넘어 영남 쪽으로 내려오면서 뜨겁고 건조해졌는데요. 경남 양산은 지난달 29일부터 이달 2일까지 닷새 연속 40도를 넘었고, 2일에는 국내 기상관측 사상 최고인 42.5도를 기록했습니다.
이후 바람이 동풍 계열로 바뀌면서 극한 더위의 중심도 서쪽으로 옮겨왔는데요. 동쪽에서 불어온 바람이 태백산맥과 소백산맥을 넘으며 고온건조해져 수도권과 충청·호남의 기온을 더욱 끌어올린 거죠.
이 더위는 가을의 시작을 알리는 입추(立秋)인 7일에도 물러나지 않았는데요. ‘입추매직’은 불발됐지만 더위가 그친다는 처서(處暑)는 23일입니다. 이번엔 ‘처서매직’을 기대해도 될까요?
입추인 7일, 전국 대부분 지역에서 폭염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기상청이 이날 오후 1시 10분 발표한 폭염 속보에 따르면 현재 수도권과 강원 내륙, 전라·경북 일부 지역에는 폭염중대경보가 내려져 있는데요. 그 밖의 전국 대부분 지역에도 폭염특보가 발효 중입니다.
오후 1시까지 일최고체감온도는 경기 하남 덕풍과 인천 강화 양도에서 38.5도까지 올랐는데요. 파주 판문점과 여주 가남은 37.9도, 용인 기흥구갈은 37.7도, 서울 강남과 인천 부평은 37.6도를 기록했습니다. 충청권에서는 홍성 죽도가 37.4도, 전라권에서는 고창 상하가 37.4도까지 올랐고요. 경상권에서도 양산과 고령, 김해 생림의 체감온도가 37.3도에 달했죠.
절기상 가을에 접어들었지만, 전국 곳곳에서 체감온도는 37~38도를 넘어서고 있는데요. 작은 기대를 품었던 ‘입추매직’은 올해도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입추매직과 처서매직은 아무리 기승을 부린 무더위라도 마법처럼 한풀 꺾이며 시원해진다는 뜻에서 생겨난 신조어인데요. 너무 덥지만 “곧 입추니까”, “곧 처서니까”라며 되뇌고 기다리는 주문과도 같았죠.

기상청 기상자료개방포털의 최근 10년 관측값을 살펴보면 이 ‘매직’은 근거 없는 이야기는 아닌데요. 2016년부터 2025년까지 입추와 처서 당일을 포함한 직전 7일의 기온과 절기 다음 날부터 7일간의 기온을 비교해본 결과 입추 직전 7일간 전국 평균기온은 10년 평균 27.90도였고, 입추 이후 7일은 26.63도였습니다.
10년 가운데 입추 뒤 전국 평균기온이 내려간 해는 8차례였는데요. 다만 2016년에는 오히려 1.2도, 2020년에는 0.5도 올랐고 2019년에는 거의 차이가 없었습니다. 서울도 입추 전후 평균기온이 29.14도에서 27.78도로 1.36도 내려갔지만, 실제 기온이 낮아진 해는 10년 중 7차례에 그쳤죠.
처서 이후 전국 평균 최고기온은 최근 10년 모두 낮아졌고, 평균기온은 8차례 내려갔는데요. 서울 역시 처서 전후 평균기온이 27.54도에서 25.08도로 2.46도, 평균 최고기온은 31.60도에서 28.69도로 2.91도 낮아졌습니다. 서울의 평균기온과 최고기온이 내려간 해는 각각 9차례였는데요.
2016년과 2022년에는 각각 처서 전후 전국 평균기온이 27.7도에서 22.5도로 무려 5.3도, 25.2도에서 21.5도로 3.6도 낮아졌는데요. 사람들의 기억에 박힐만한 완벽한 ‘처서매직’이었죠.

하지만 입추매직에 이어 처서매직에 기대는 것처럼 그 ‘매직’은 뒤로 밀리거나 찾아오지 않고 있는데요. 옛말이라는 이야기까지 나올 정도로 최근 들어 더 강해졌죠. 2024년에는 처서 직전 7일간 전국 평균기온이 28.1도, 이후 7일이 27.0도로 하강 폭이 1.0도에 그쳤는데요. 평균 최고기온도 32.8도에서 31.8도로 내려왔지만, 여전히 30도를 훌쩍 넘었습니다.
2025년에는 처서 전후 전국 평균기온이 28.1도에서 27.8도로 불과 0.4도 낮아졌는데요. 평균 최고기온 역시 33.3도에서 32.8도로 0.5도 내려가는 데 그쳤죠.
기상청이 지난해 9월 4일 발표한 2025년 여름철 기후특성을 보면 8월 18~25일 전국 일평균기온은 날짜별 역대 1~2위를 기록했습니다. 처서인 23일부터 25일까지는 해당 날짜 기준 역대 가장 더웠는데요.
2025년 8월 하순 전국 평균기온은 27.8도로 평년보다 3.9도 높아 역대 1위였죠. 2024년 8월 하순도 27.1도로 2위였는데요. 최근 2년 연속 처서가 지나서도 기록적인 늦더위가 이어진 셈입니다.
올해 처서는 23일이죠. 예보된 장기전망을 살펴보면 더위가 처서와 동시에 끝날 가능성은 크지 않은데요.
기상청이 6일 발표한 1개월 전망에 따르면 처서가 포함된 8월 17~23일 전국 주평균기온이 평년보다 높을 확률은 60%입니다. 이 기간 평년 주평균기온은 24.2~25.6도지만 올해는 북태평양고기압의 영향을 받아 덥고 습할 것으로 예상됐죠.
주평균 최저기온과 최고기온 역시 평년보다 높을 확률도 각각 60%인데요. 전국 주평균 최고기온이 32.4도를 넘는 이상고온이 나타날 확률은 25%로, 평상시 발생 확률인 10%보다 높게 제시됐습니다.
처서 다음 주인 8월 24~30일에도 주평균기온이 평년보다 높을 확률도 50%인데요. 8월 31일~9월 6일과 9월 7~13일 역시 평년보다 높을 확률이 각각 50%로 전망됐죠.
당장 11~17일 중기예보에서도 전국 아침 기온은 21~26도, 낮 기온은 28~35도로 평년보다 높겠습니다. 기상청은 전국 대부분에서 최고체감온도가 33도 이상, 내륙을 중심으로 35도 이상 오르며 폭염과 열대야가 계속될 것으로 내다봤는데요.

다음 주에도 무더위는 이어질 전망입니다. 10일부터 일주일간 전국 아침 기온은 22~26도, 낮 기온은 28~36도로 평년보다 높겠는데요. 한낮 체감온도가 35도 안팎까지 오르는 곳도 있어 이번 주말의 기온 하락은 극한 폭염이 잠시 누그러지는 정도에 가깝죠.
이후 날씨의 변수는 제13호 태풍 ‘돌핀’입니다. 돌핀이 중국 쪽으로 이동한 뒤 기압계가 재편되면서 북쪽의 선선한 공기가 내려올 수도 있지만, 북태평양고기압과 티베트고기압이 다시 한반도를 덮을 가능성도 있는데요. 주말 이후 기온이 계속 내려갈지, 극한 폭염이 다시 나타날지는 아직 단정하기 어렵습니다.
올해도 처서가 가까워지면 지금의 38~39도짜리 극한 폭염은 한 단계 약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온이 32~34도로 내려간다고 곧바로 폭염이 끝났다고 보기는 어려운데요.
절기는 계절이 움직일 때가 됐다는 신호일 뿐, 더위를 끝내는 스위치는 아니죠. 올해 처서매직의 성패도 결국 달력이 아니라 북태평양고기압이 언제 물러나고 북쪽의 선선한 공기가 언제 내려오느냐에 달렸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