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 너머] '오염된 의자' 보다 '빈 의자'가 낫다

입력 2026-02-0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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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실에 의자 하나가 비어 있다. 결정은 늦어지고 불편함도 따른다. 하지만 회의 자체가 불가능해지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빈 의자'가 아니라 '오염된 의자'일 때다. 앉는 순간 해명이 먼저 필요한 사람이 그 자리를 차지할 때 조직은 더 위태로워진다.

기획예산처가 출범했지만 수장 공백 상태는 벌써 한 달째다. 이를 두고 컨트롤타워 부재와 책임 공백을 우려하는 시선이 잇따른다. 그러나 이 사안을 단순히 '공백의 문제'로만 규정하는 접근은 성급하다. 정부 부처는 개인의 판단으로 움직이는 조직이 아니라 이미 갖춰진 절차와 시스템으로 작동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현재는 차관이 장관 직무대행 역할을 맡아 공백을 메우고 있다. 기획처의 기본 업무도 정해진 절차에 따라 진행된다. 정책 조율 기능도 완전히 멈춰 선 상태는 아니다. 수장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국가 운영이 즉각 흔들리는 구조라고 보기 어렵다. 공백은 불편할 수 있지만 그 자체로 실패는 아니다.

문제는 인사다. 누가 그 자리에 앉을 것인지, 그 인물이 조직 내부는 물론 국민에게 신뢰를 줄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 그저 빈 의자에 대한 불안한 시선을 이유로 속도를 목표로 삼는 순간 상황은 더 어려워질 수 있다.

기획처 수장은 단순히 행정 책임자가 아니다. 국가 예산이라는 한정된 재원을 놓고 각 부처의 요구를 걸러 무엇을 우선할지 판단하는 자리다. 이 역할에는 위압이 아니라 신뢰가 필요하다. 결정의 이유를 설명할 수 있어야 예산은 작동한다.

수장 공백 상태에서는 문제가 생기면 되돌릴 여지가 있다. 그러나 잘못된 인사가 낳은 신뢰 훼손은 쉽게 복구되지 않는다. '일단 채우고 보자'는 접근이 위험한 이유다. 공백이 길다는 비판을 피하기 위해 기준을 낮추는 순간 조직은 더 긴 시간을 잃게 된다. 인사 검증을 형식적으로 처리한 대가는 정책 지연과 조직 소모로 돌아온다.

빈 의자가 당장은 불편하겠지만 회의를 못하게 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앉는 순간부터 그 자격을 해명해야 하는 오염된 의자는 논의를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만든다. 인사는 채우는 행위가 아니라 증명하는 과정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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