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LG·현대차 등 피소 다수⋯악의적 NPE 제소 비중 압도
소송에 중소·중견기업 부담↑⋯"정부, 대응ㆍ예방 지원해야"

글로벌 기술 패권 전쟁이 격화되면서 특허가 혁신의 보호 장치가 아닌 상대를 주저앉히는 ‘공격용 무기’로 전락했다. 해외 발(發) 특허 소송은 천문학적인 법적 비용과 경영 불확실성을 가중시키며 우리 기업들의 등골을 휘게 만든다. 대기업조차 감당하기 힘든 막대한 소송 비용은 대응 여력이 전무한 중소기업에 폐업까지 부르는 치명타가 된다. 국가 차원의 특허 방어 체계 구축 없이는 공들여 쌓은 기술 강국의 위상도 모래성에 그칠 수 있다는 경고음이 커지고 있다.
25일 본지가 구자근 국민의 힘 의원실을 통해 확보한 지식재산처 자료에 따르면, 2020년부터 지난해 10월까지 약 5년간 우리나라 기업들이 해외에서 특허침해를 이유로 피소된 사건은 총 586건으로 집계됐다. 해외 기업들이 국내 기업이 보유한 기술과 제품을 문제 삼아 자국 법원에서 특허침해 소송을 제기하는 사례가 이어지는 것이다.
문제는 이 같은 소송이 특허 보호를 넘어 합의금이나 사용료를 노린 수단으로 악용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점이다. 후발주자들의 시장 진입을 막기 위한 목적도 다분하다.
산업별로는 전기·전자 분야가 전체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전기·전자 관련 소송은 470건으로,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전기부품 등 우리나라 주력 산업 전반에서 특허 분쟁이 집중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어 기구·기기 분야 67건, 화학·바이오 21건, 가구·토목 등 기타 산업이 16건 순이었다.
기업별로 보면 삼성전자가 338건으로 가장 많았고, LG전자 105건, 현대자동차 27건 등이 뒤를 이었다. 특히 해외 제조업체보다 특허자산관리업체(NPE)로부터 제소된 비중이 상당했다. 삼성전자는 해외 제조업체로부터 87건, NPE로부터 251건의 소송을 당했으며, LG전자(제조업체 12건·NPE 93건), 현대자동차(제조업체 2건·NPE 25건) 역시 NPE 비중이 높았다.
NPE는 특허를 직접 활용해 제품을 생산하지 않고, 특허권을 매입한 뒤 유사 기술을 사용하는 기업을 상대로 사용료를 요구하거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는 방식으로 수익을 창출한다. 업계에서는 이를 ‘특허 괴물’로 부르기도 한다. 물론 방어 목적의 NPE도 존재하지만, 실제 분쟁의 상당수는 이같은 ‘비실시 NPE’가 주도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소부장(소재·부품·장비) 분야에서도 피해는 적지 않다. 같은 기간 특허침해 소송을 당한 상위 10개 소부장 기업을 분석한 결과, 총 143건의 소송 가운데 우리 기업의 승소는 8건, 패소는 6건에 그쳤다. 소송이 취하된 사례는 92건에 달했다. 법원이 특허 침해가 아니라는 판단을 내린 사례가 상대적으로 많았다는 점을 고려하면, 합의금을 노린 소송 제기가 상당 부분 포함돼 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특허 소송이 시작되면 기업이 감당해야 할 부담은 막대하다. 변호사·변리사 비용은 물론, 소송 대응을 위한 전담 인력 투입과 경영 리스크 관리 비용까지 고정비가 급증한다. 특히 중견·중소기업의 경우 인력과 자금 여력이 부족해 대응 자체가 어려운 경우도 많다.
소송은 수년간 이어진다. 이 과정에서 납품 중단이나 거래처 이탈, 투자 위축이 이어지며 “이겨도 회사는 이미 흔들린다”는 말이 나온다.
실제 미국 반도체 장비 업체 램리서치로부터 특허 소송을 당한 국내 소부장 기업 CMTX는 “대법원까지 이어질 수 있는 장기 소송 비용과 손해배상 리스크로 인해 기술 개발과 영업 등 기업 활동 전반이 위축될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CMTX는 램리서치의 특허 공격에 대응하기 위해 해당 특허가 무효라는 취지의 특허무효심판을 제기했다. 특허심판원이 이를 인용하며 사건은 일단락됐지만, 그 과정에서 CMTX는 장기간 소송에 따른 막대한 비용 부담과 경영 전반의 위축을 감내해야 했다.
구자근 의원은 “특허 소송은 결과와 무관하게 기업의 시간과 자원을 소진시키는 구조”라며 “특히 중견·중소기업은 대응 여력이 부족한 만큼 정부가 분쟁 대응과 예방을 아우르는 지원책을 마련해 부담을 덜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