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벤츠, 1100억 세금 안 낸다…法 "양도 아닌 증여"

입력 2026-01-20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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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츠코리아 지분 51% 이전, '대가' 있었는지가 쟁점
法 "지분 이전, 따로 떼어 판단해야"…세무당국 논리 배척

▲서울 서초구 서울행정법원 (조소현 기자 sohyun@)
▲서울 서초구 서울행정법원 (조소현 기자 sohyun@)

세무당국이 독일 자동차업체 메르세데스-벤츠 그룹의 글로벌 구조개편 과정에서 이뤄진 국내 법인 지분 이전을 ‘사실상 양도’로 보고 1100억 원대 세금을 부과했지만, 법원이 이를 취소했다. 향후 상급법원에서도 이 같은 판단이 유지될 경우 외국법인이 국내 법인 주식을 넘기는 거래에서 과세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을 제시한 사례가 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20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5부(이정원 부장판사)는 최근 메르세데스-벤츠 AG가 남대문세무서장을 상대로 제기한 법인(원천)세 징수처분 등 취소청구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남대문세무서가 2022년 3월 메르세데스-벤츠 AG에 부과한 2019 사업연도 법인세 약 1091억 원과 증권거래세 약 54억 원을 모두 취소했다.

이번 소송은 다임러 AG(현 메르세데스-벤츠 그룹 AG)가 보유하던 메르세데스-벤츠 코리아(벤츠코리아) 지분 51%를 메르세데스-벤츠 AG에 이전한 행위를 어떻게 볼 것인지를 둘러싼 분쟁이다.

앞서 벤츠 그룹은 2017년부터 전 세계 사업 구조를 재편하는 작업을 추진해 왔으며, 그 과정에서 기존 사업 체계를 승용차·밴, 트럭·버스, 금융서비스 등 3개 사업부문으로 나누고 각 사업부문을 담당하는 법인을 신설하는 지배구조 개편을 진행했다.

승용차와 밴 사업을 전담하는 법인으로 메르세데스-벤츠 AG가 설립됐고, 이에 따라 다임러 AG는 2019년 11월 한국에서 수입차 판매를 담당하던 벤츠코리아 지분 51%를 해당 법인에 이전했다.

쟁점은 이 지분 이전을 '증여'로 볼 것인지, 실질적으로 대가가 오간 '양도'로 볼 것인지였다. 증여로 인정될 경우 대한민국은 한·독 조세조약에 따라 국내에서 과세할 수 없지만, 양도로 판단되면 법인세와 증권거래세 부과가 가능해진다.

한·독 조세조약은 한국과 독일 양국이 동일한 소득에 대해 이중으로 과세하지 않도록 과세권을 나눈 국제 협약이다. 조약은 주식 양도로 발생한 소득에 대해서는 과세할 수 있도록 규정하면서도, 증여처럼 조약에서 별도로 규정하지 않은 소득(기타소득)에 대해서는 해당 법인의 거주지국에서만 과세하도록 하고 있다. 이 때문에 지분 이전이 증여로 인정되면 한국은 과세권을 행사할 수 없게 된다.

메르세데스-벤츠 AG는 해당 지분 이전이 아무런 대가 없이 이뤄진 무상 이전이라며 '증여'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회사 측은 "주식 이전에 대해 어떠한 반대급부도 지급하지 않았으므로 이는 증여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국세청 본청 전경 (사진제공=국세청)
▲국세청 본청 전경 (사진제공=국세청)

반면 세무당국은 지분 이전에 실질적인 대가가 있어 '유상양도'에 해당한다고 봤다. 그룹의 구조개편 과정에서 메르세데스-벤츠 AG가 다임러 AG에 신주 약 9억9995만 주를 발행했는데, 이 신주 발행이 구조개편의 일부로 이뤄진 만큼 벤츠코리아 지분 이전의 대가도 포함돼 있다는 논리였다.

또 두 회사가 100% 모자회사 관계인 점을 들어 모회사인 다임러 AG가 자회사에 지분을 무상으로 넘기더라도 자회사 자산이 늘어나고, 그 결과 모회사가 보유한 자회사 지분 가치가 상승하는 경제적 이익을 얻게 되므로 이는 사실상 대가에 해당한다고 봤다. 설령 형식상 증여라 하더라도 한·독 조세조약에 따라 국내 과세를 피하기 위해 증여 방식을 택한 조세조약 남용에 해당한다는 주장도 폈다.

그러나 재판부는 세무당국의 주장을 모두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메르세데스-벤츠 AG가 구조개편 과정에서 다임러 AG에 신주를 발행했다는 사정만으로 해당 신주 발행에 벤츠코리아 지분 51% 이전의 대가까지 포함돼 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주식 이전이 구조개편의 일환으로 이뤄졌다고 하더라도 개별 계약에 따른 거래는 각각 독립된 거래로 봐야 한다"며 "세무당국이 이를 하나의 거래로 묶어 과세대상으로 삼을 수는 없다"고 밝혔다. 구조개편 계약서상 신주 발행 대가로 이전되는 자산과 주식이 특정돼 있음에도 그 목록에 벤츠코리아 지분은 포함돼 있지 않다는 점도 지적했다.

특히 재판부는 세무당국이 신주 발행 물량 중 어느 부분이 지분 이전의 대가에 해당하는지, 그렇게 볼 수 있는 근거가 무엇인지를 전혀 특정하거나 입증하지 못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가치가 막대한 주식을 아무런 대가 없이 증여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는 추측만으로는, 당사자가 선택한 거래의 성격을 부인하고 이를 유상양도로 재구성해 과세할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또 모회사와 자회사 사이의 100% 지배 관계에서, 자회사에 주식이나 자산이 이전되면 모회사가 보유한 자회사 지분 가치가 상승하는 것은 지배 구조상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결과일 뿐이라고 판단했다. 이러한 지분 가치 상승은 모자회사 관계에서 당연히 수반되는 효과에 불과하며, 이를 근거로 자회사가 모회사에 지분 이전의 대가를 지급했다고 평가할 수는 없다고 했다.

조세조약 남용 주장에 대해서도 조세회피만을 목적으로 한 비합리적인 거래가 아닌 이상, 납세의무자가 동일한 경제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여러 거래 방식 중 세 부담이 적은 방식을 선택하는 것은 합리적인 경제활동 범위에 속한다고 봤다. 국내 과세를 피하려는 점이 고려 요소였을 수는 있지만, 그 자체만으로 조약을 남용하거나 권리를 남용했다고 볼 수는 없다는 취지다.

재판부는 결국 해당 지분 이전에 실질적인 대가가 지급됐다고 보기 어렵다며, 이를 전제로 부과된 법인세와 증권거래세는 위법하다고 결론 내렸다.

법조계에서는 이번 판결이 외국 글로벌 기업이 국내 법인 주식을 넘겨받은 경우라도, 그 주식 이전 자체에 대해 대가가 확인되지 않으면 과세할 수 없다는 기준을 분명히 한 사례로 보고 있다. 또 조세회피와 합법적 절세의 경계를 분명히 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는 분석도 나온다.

박기태 변호사(법무법인 한중)는 "재판부는 조세회피와 절세는 다르다고 강조했다"면서도 "세무당국 입장에서는 판단이 확정될 경우 유사한 구조개편 과세에 제약이 생길 수 있어, 대법원까지 다툴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남대문세무서는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다. 국세청 관계자는 항소 이유에 대해 "밝히기 어렵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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