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의는 빠르게, 충돌은 더 크게
반도체·노동·재정·세제는 ‘지지층 결집’ 구간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국회의 움직임이 두 갈래로 뚜렷하게 갈리고 있다. 생활과 직결된 민생 법안에서는 여야가 속도감 있게 합의에 나서지만, 산업·노동·재정처럼 이해관계가 첨예한 구조 개편 법안에서는 정면충돌을 불사하는 양상이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이를 두고 “선거를 앞둔 국회가 민생과 정쟁을 동시에 관리하는 ‘이중 트랙’에 들어섰다”는 평가가 나온다.
여야가 민생 합의에 공을 들이는 이유는 지방선거다. 지방선거는 중앙 정치 구호보다 지역의 체감 경기와 생활 안정이 표심에 직결된다. 소상공인 금융 부담 완화, 의료·돌봄 공백 해소, 취약계층 지원처럼 반대 명분이 약한 법안은 어느 당이든 가로막기 어렵다. 이런 법안을 둘러싼 갈등이 장기화될 경우 “민생을 외면했다”는 책임론이 고스란히 선거로 돌아올 수 있다는 경계심이 여야 모두에 자리 잡고 있다.
실제로 최근 국회에서는 비쟁점 민생 법안을 중심으로 합의 처리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원내대표 간 회동도 잇따르고 있다. 다만 회동의 횟수에 비해 가시적 성과는 제한적이라는 평가가 많다. 의제에 대한 문제의식은 공유되지만 세부 설계나 처리 순서를 둘러싼 주도권 싸움에서 번번이 이견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정치권에서는 “민생 합의의 끈을 놓지 않는 것 자체가 선거 국면에서 중요한 신호”라는 해석이 나온다.

민주당은 다수당으로서 민생 법안 처리 실적을 쌓아 ‘일하는 국회’ 이미지를 굳히려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국정 운영의 안정성과 책임을 강조하며 민생 성과를 통해 중도층을 선점하겠다는 계산이다. 국민의힘 역시 민생 법안에는 협조적 태도를 유지하며 ‘발목잡기 야당’이라는 프레임을 차단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민생 법안에 반대하는 순간, 야당은 설명 비용이 급격히 커진다”고 말했다.
그러나 국회 한편에서는 정쟁의 전선이 오히려 더 또렷해지고 있다. 반도체·첨단산업 지원, 노동 제도 개편, 재정 운용 방식이 대표적이다. 반도체 특별법의 경우 산업 지원 필요성에는 공감대가 있지만, 주 52시간제 예외 적용과 같은 노동 규제 완화 여부를 놓고 여야는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노동 분야에서도 플랫폼 종사자 보호, 근로시간 유연화, 정년 문제를 두고 보호 강화와 기업 부담 완화라는 노선 차이가 분명하다. 재정 역시 확장 재정과 건전 재정의 대립이 예산안 심사 국면에서 다시 충돌할 가능성이 크다.
이 같은 구조 개편 법안은 단순한 정책 논쟁을 넘어 지지층 결집용 쟁점으로 기능한다. 선거를 앞두고 각 당이 핵심 지지층에게 선명한 메시지를 던질 수 있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정치권에서는 “민생은 중도층을 붙잡는 안전핀이고 구조 의제는 지지층을 결집시키는 확성기”라는 표현이 회자된다.
문제는 이 두 트랙이 충돌할 경우다. 구조 쟁점이 예산안이나 본회의 일정과 맞물리면 국회 파행으로 이어질 수 있고 그 여파는 경제 전반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있다. 정치적 불확실성이 커질수록 기업 투자와 소비 심리가 위축된다는 점은 여러 연구에서 반복적으로 지적됐다. 민생 합의를 외치면서도 정쟁이 장기화할 경우 정치 리스크가 다시 시장 불안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정치평론가들은 여야의 이중 트랙 전략을 두고 엇갈린 평가를 내놓는다. 한 평론가는 “지방선거를 앞둔 국회에서 민생과 정쟁을 분리하려는 시도는 현실적 선택”이라며 “민생 합의 없이 선거를 치를 수는 없고 그렇다고 구조 의제에서 물러나면 지지층 결집이 어렵다”고 분석했다. 또 다른 평론가는 “민생 합의가 이벤트성으로 그치고 구조 정쟁만 부각될 경우 유권자의 피로감이 더 커질 수 있다”며 “정쟁의 명분과 관리 능력을 동시에 증명하지 못하면 중도층 이탈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결국 지방선거를 향한 국회의 싸움은 두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 겉으로는 민생 성과를 경쟁하고 이면에서는 구조 개편을 둘러싼 주도권 싸움을 이어간다. 이중 트랙은 선거가 다가올수록 더욱 선명해질 가능성이 크다. 다만 최종 성적표는 국회가 아닌 민심이 매긴다. 민생 합의가 실제 생활의 변화로 이어졌는지 정쟁이 불가피했다면 그 명분을 설득했는지가 승패를 가를 관건이 될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