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ㆍ공급망ㆍ관세ㆍ배터리 등
지역순회 아닌 의제 중심 재편
외교ㆍ정책 변화 즉각대응 포석

삼성·현대자동차·SK·LG·롯데·한화 등 6대 그룹 총수들이 올해 지구 10바퀴에 해당하는 이동거리를 오가며 사실상 ‘하늘 위에서 경영한 해’를 보냈다. 통상 외교가 다시 전략 의제로 부상하면서 각 그룹의 최고 의사결정권자가 직접 글로벌 현장을 누빈 결과다.
14일 재계에 따르면 6대 그룹 총수들은 올해만 최소 30만~35만㎞를 이동했다. 공개 일정만 합산한 수치로 비공개 출장과 경유 비행을 포함하면 실제 이동거리는 이보다 훨씬 길다. 통상 재편의 파고 속에 총수들의 해외 출장은 예년보다 뚜렷하게 증가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조정,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통상 복원 기조, 중동·인도·동남아의 신제조 투자 경쟁이 겹치며 ‘총수 직접전’이 불가피했던 해로 평가된다. 올해 출장 키워드는 △관세 △배터리 △전기차(EV) △수소 △중동 투자 △방산 △인공지능(AI)으로 요약된다.
올해 총수들의 이동은 지역 순회가 아니라 의제 중심으로 재편됐다. 반도체·AI 공급망, 자동차 관세 대응, 배터리·EV 투자, 중동 자본과의 연계, 방산 수출 외교라는 다섯 개 축 위에서 각 그룹이 동시에 움직였다.반도체·AI 공급망 불확실성이 커지자 삼성·SK·LG는 미국·중국·일본·대만을 잇는 기술 지도 위에서 겹치듯 이동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중국과 일본에서 반도체 협력 파트너를 재정비하고 미국에서는 빅테크·행정부 인사와 접촉하며 공급망을 직접 점검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TSMC·미국 의회·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네트워크를 잇는 ‘민간 통상 외교’ 역할을 수행했고 구광모 LG그룹 회장은 인도·미국을 중심으로 배터리·AI 인프라 전략을 조율했다.

자동차 관세 변수는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의 일정을 사실상 관통했다. 미국 백악관·조지아·마러라고까지 이어진 행보는 관세·인플레이션감축법(IRA)·투자 패키지를 총수 레벨에서 바로잡기 위한 성격이었다. 일본·중동 출장 또한 공급망 재편과 직결된 일정으로 구성됐다.
중동은 ‘신자본·신산업’의 경합지로 부상하며 총수들의 공통 목적지가 됐다. 삼성·현대차·한화는 아랍에미리트(UAE)·사우디에서 에너지·수소·방산·AI 협력에 직접 뛰어들었다.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은 방산·에너지 의제를 중심으로 가장 넓은 지역을 소화했고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동남아와 더불어 중동 소비·유통망을 복합적으로 점검했다.
재계 관계자는 “각 그룹의 올해 이동 패턴은 단순한 출장 기록이 아니라 통상·공급망·정책이 교차하는 전략 지형에서 직접 성과를 만들기 위한 움직임이었다”며 “중동·미국·일본·인도 등 주요 일정이 집중된 지역은 하반기 외교 국면과 맞물려 글로벌 자본 이동과 정책 변화에 즉시 대응하려는 목적이 컸다”고 분석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