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 철강 TRQ 배제·배터리 지원 요청⋯EU "한국 피해 최소화 검토"
한국과 유럽연합(EU)이 기존의 자유무역협정(FTA) 체제를 넘어 경제안보와 공급망 이슈를 포괄하는 장관급 '차세대 전략대화'를 신설한다.
미국 등 글로벌 통상 환경의 불확실성이 커지는 가운데 양측이 통상 협력의 판을 전면적으로 '재설계'하기로 합의한 것이다.
우리 정부는 철강·배터리·탄소국경조정제도(CBAM) 등 EU의 잇따른 규제 도입으로 우리 기업이 직면한 통상 불확실성을 조속히 해소해 줄 것을 강력히 요청했다.
산업통상부는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이 1~3일(현지시간) 벨기에 브뤼셀을 방문해 마로시 세프초비치 EU 통상·경제안보 집행위원 등 고위급 인사들과 면담을 했다고 3일 밝혔다.
양측은 이번 회담에서 기존의 상품·서비스 교역 중심인 한-EU 자유무역협정(FTA) 체제로는 급변하는 통상 환경에 대응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점에 공감했다.
미·중 패권 경쟁 심화와 신흥 안보 위협 속에서 양측의 협력 구조를 고도화할 필요성이 제기된 것이다.
이에 따라 양측은 기존 장관급 FTA 무역위원회를 확대 개편해 내년 상반기 중 한-EU 차세대 전략대화를 출범하기로 했다.
새 협의체는 경제안보, 공급망, 첨단 기술 이슈를 포괄하는 최상위 전략 기구로서, 기술 패권 경쟁과 복합 위기에 공동 대응하는 '컨트롤타워' 역할을 맡게 된다.
정부는 이번 협력의 양대 축으로 △EU 내 한국 기업의 규제 불확실성 해소(위험 관리)와 △디지털·공급망 등 신통상 분야 공동 의제 발굴(미래 협력)을 제시했다.
여 본부장은 이번 방문에서 EU의 무역장벽 강화에 대한 우리 기업의 우려를 전달하고 실질적인 보호 장치 마련을 촉구했다.
우선 2026년 6월 철강 세이프가드 종료 이후 EU가 도입하려는 신규 수입규제와 관련해, 우리 정부는 한국산 철강의 안정적 수출 물량 확보를 위해 저율관세할당(TRQ) 적용 배제나 쿼터 확보 등 각별한 배려를 요청했다.
특히 한국이 설비 조정과 저탄소 전환을 적극 추진 중임을 강조하며 신규 조치 도입 시 한국이 '최우선 협상 대상국'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EU 측은 "한국을 우선 협상대상국으로 고려하고 있으며, 한국 기업의 피해를 줄이는 방향을 검토하겠다"고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내년 본격 시행을 앞둔 탄소국경조정제도와 관련해서는 제도의 합리적 운영을 위한 구체적인 요구사항이 전달됐다.
우리 정부는 최근 CBAM 법 개정 과정에서 인증서 요건 완화 등 한국 측 건의가 반영된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배출량 산정 방식 등 핵심 하위 규정 발표가 지연되고 있는 점을 지적하며 조속한 확정을 촉구했다.
특히 제도 적용 대상이 하류재(완제품)로 확대될 경우 공급망 말단의 중소기업에 과도한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했다. 이에 따라 현행 기본 상품에 대한 영향 평가가 선행될 때까지 확대 적용을 중지하고, 한국처럼 배출권거래제(K-ETS)를 운영 중인 국가의 탄소 가격을 충분히 인정해 이중 규제를 방지해야 한다고 강력히 강조했다.
배터리 분야에서도 우리 측은 헝가리와 폴란드 등에 대규모 투자를 단행한 한국 기업들이 EU 공급망의 주역임을 강조하며 규제 불확실성 해소를 요구했다.
구체적으로 EU의 배터리법 후속 이행규정의 조속한 확정, 에너지 집약 산업에 배터리 분야를 포함해줄 것 등을 요청했다.
보리스 부드카 유럽의회 산업연구위원장은 "유럽 내 배터리 생산 능력의 약 절반이 한국 기업에 의해 구축됐다"며 "유럽과 한국은 배터리 공급망에서 한 배를 탄 운명 공동체"라고 화답했다.
최근 EU가 진행 중인 체코 원전 수주 관련 역외보조금(FSR) 조사에 대해서는 정부 차원의 강력한 우려가 전달됐다.
여 본부장은 "팀코리아의 체코 원전 수주는 공정하고 투명한 공개경쟁의 결과이며, 시장 원칙에 어긋나는 보조금 지급 사실이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조사가 명백히 불공정하거나 불합리한 결과로 이어질 경우 양측 협력 관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공정한 처리를 당부했다.
양측은 또 디지털 교역 활성화를 위한 한-EU 디지털통상협정(DTA)이 조속히 서명될 수 있도록 각국의 국내 절차를 신속히 진행하기로 합의했다.
여 본부장은 "이번 방문을 통해 EU의 신규 철강규제, 원전 보조금 조사 등 주요 현안에 대한 우리 입장을 분명히 전달했다"며 "앞으로도 기업의 예측 가능성을 높이고 안정적인 공급망을 구축하기 위해 EU와 긴밀히 협의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