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간호사이자 수도자…정춘실 케냐 성 데레사 진료소장

입력 2025-12-0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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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춘실 케냐 성 데레사 진료소장이 21일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역 인근 카페에서 이투데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고이란 기자 photoeran@ (이투데이DB)
▲정춘실 케냐 성 데레사 진료소장이 21일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역 인근 카페에서 이투데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고이란 기자 photoeran@ (이투데이DB)

“상금이 없었으면 상 받으러 올 생각도 하지 않았을 거예요.”

정춘실 케냐 성 데레사 진료소장이 제37회 아산상을 받기 위해 지구 반대편에서 한국까지 날아온 이유는 ‘상금 3억 원’이다. 이 돈은 케냐의 빈곤 농촌 ‘칸고야(Kangoya)’에 새 진료소를 열고 의료진을 모아, 앞으로 수천 명의 목숨을 구하는 데 쓰일 예정이다. 정 진료소장은 아산상 수상자로 선정된 것을 ‘기적’이라며 미소지었다.

본지는 지난달 21일 서울 충정로 한 카페에서 정 진료소장을 만나 아프리카를 누비며 인술을 펼친 경험과 소회를 듣고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다. 수녀이자 간호사인 정 진료소장은 2000년부터 케냐와 말라위를 오가며 지역 의료 인프라를 구축했다. 의료기관이 없었던 케냐의 키텐겔라(Kitengela) 황무지에 2003년 성 데레사 진료소를 설립해 현재까지 운영하고 있으며, 케냐의 또 다른 의료 취약 지역인 칸고야에도 진료소 개소를 준비 중이다.

정 진료소장이 처음 도착한 키텐겔라 지역은 ‘야생’ 그 자체였다. 원주민인 마사이족과 빈민들이 거주하고 있었으며, 의료기관은 차치하고 생활에 필요한 제반 시설도 찾아보기 어려웠다. 2007년 케냐 대통령 선거를 기점으로 수도 나이로비의 정치적 혼란과 내전이 격렬해지면서, 유혈충돌을 피해 유입되는 이주민까지 급증했다. 정 진료소장은 진료소를 찾는 사람들을 위해서라면 맨손으로 무엇이든 해냈다.

정 진료소장은 “2000년대 초 키텐겔라 지역 인구는 약 9000명에 불과했고, 진료소를 열 건물조차 없었다”라며 “스페인에 있는 협력기구에서 건물을 마련해 줬지만, 진료에 필요한 내부 설비와 가구, 검사장비, 의료기기와 집기는 모두 한국에서 모금을 통해 조달했다”라고 회고했다. 이어 “지금 키텐겔라 인구는 수십만이 됐다”라며 “성 데레사 진료소 이후 의료기관도 하나 둘씩 늘어나, 현재는 관내 병원이 50개쯤 있고 위생 상태도 상당히 개선됐다”라고 말했다.

없는 살림에 무료 진료·직원 교육 지원…“매번 절묘한 기적 찾아와”

▲정춘실 케냐 성 데레사 진료소장이 21일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역 인근 카페에서 이투데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고이란 기자 photoeran@ (이투데이DB)
▲정춘실 케냐 성 데레사 진료소장이 21일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역 인근 카페에서 이투데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고이란 기자 photoeran@ (이투데이DB)

성 데레사 진료소는 지역사회의 지렛대로 기능하고 있다. 병원과 약국의 역할은 물론, 병원 직원들과 주민들을 교육하고 음식을 나눠주기도 한다. 명칭은 진료소지만 동네 주민센터와 다르지 않다.

정 진료소장은 “진료비와 약값을 받기는 하지만 건강보험이나 기부금의 혜택도 받지 못하는 환자들에게는 무료 진료도 제공한다”라며 “진료소에 찾아온 고아 소년을 청소부로 채용하고 공부를 지원했는데, 현재 진료소 검사실에서 임상병리사로 일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진료소에서 근무하는 일반의사의 학업을 지원해 현재는 안과 전문가 됐다”라며 “교육을 통해 현지인들이 스스로 성장하고 행동하도록 돕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강조했다.

들어오는 것보다 나눠주는 것이 더 많은 성 데레사 진료소의 특성상, 재정적 형편은 넉넉하지 않다. 하지만 정 진료소장은 오히려 더 많은 환자와 빈민들이 진료소를 찾아와 도움을 받길 바라고 있다. 진료소 운영 비용과 비품이 부족하거나, 이동 진료를 위한 차량을 구하지 못하는 등 난관에 봉착할 때마다 위기를 간신히 극복할 만큼의 절묘한 ‘기적’이 찾아왔다. 반복되는 기적이 정 진료소장의 품을 더욱 넓게 만들었다.

정 진료소장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지역 주민들 대부분이 실직하고 끼니를 해결하기 어려운 시기가 있었다”라며 “진료소에서 많은 환자를 무료로 진료하고 종일 식량을 무료로 나눠주며 버텼는데, 신기하게도 항상 직원들의 월급을 줄 만큼의 돈이 남았다”라고 웃어 보였다. 이어 “작년에는 이동 진료에 필요한 차량을 구할 자금이 없어 수녀회에서 2000만 원을 빌려줬는데, 한국의 마리안느·마가렛 선양사업 추진위원회에서 대통령 표창을 준다는 연락을 받았다”라며 “그 표창의 상금이 딱 2000만 원이었다”라고 덧붙였다.

궁지 몰린 칸고야 진료소 건립 작업…아산상 덕분에 재시동

▲정춘실 케냐 성 데레사 진료소장이 21일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역 인근 카페에서 이투데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고이란 기자 photoeran@ (이투데이DB)
▲정춘실 케냐 성 데레사 진료소장이 21일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역 인근 카페에서 이투데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고이란 기자 photoeran@ (이투데이DB)

올해 아산상 수상 역시 정 진료소장을 둘러싼 기적의 이어달리기다. 현재 케냐 칸고야에 마련한 새 진료소 개소에 필요한 비용을 상금으로 충당할 수 있게 됐다. 칸고야 진료소는 지난해 11월 자금이 바닥나면서 건립 작업이 멈췄다. 천주교한마음한몸운동본부가 한국에서 긴급히 모금을 통해 보내온 돈도 올해 4월에 소진돼, 사면초가 상태였다. 정 진료소장은 아산상 수상자로 선정됐다는 소식을 전달받기 전까지는 아산사회복지재단의 존재조차 몰랐다.

정 진료소장은 “올해 6월에 아산사회복지재단과 대한간호협회로부터 이메일을 받았는데, 당시 정전이 돼서 수상 소식을 알지 못했다”라며 “한참 시간이 지난 후에 수상 안내를 확인하고는 소름이 돋았다. 칸고야 진료소에 필요한 만큼의 기적이 찾아왔다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회상했다. 그는 “진료소 건축 비용을 지급하고, 내부의 각종 기기의 대금도 지급하면 내년에는 개소 준비에 속도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부연했다.

20세에 종신서원을 한 정 진료소장은 이제 한국보다 영국과 아프리카에서 더 많은 세월을 보냈다. 한국어보다 영어로 말하는 것이 더 편하고, 케냐 현지식이 한식보다 익숙하다. 정 진료소장은 “평생 드러내지 않고 숨어서만 살아왔는데, 한국에서 어떻게 나를 발견하고 도움을 주는지 신기하다”라며 “내가 하는 일은 대단한 것이 아니라 그저 살기 위해 하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정 진료소장은 “진료소를 운영하고 사람들과 나누는 것은 대수롭지 않은 삶이다”라며 “봉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라고 힘줘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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