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NG 호황 후 중국과의 경쟁 우위 지킬 수 있을지 고민 필요"
"협력업체와 상생하며 물량을 유지하는 안정화 전략이 중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조선업 재건 프로젝트(MASGA)를 본격적으로 가동하며 한국 조선업계도 수혜를 입을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한화오션은 지난해 1억 달러를 들여 미국에 있는 필리조선소를 인수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며 건조 장소를 필리조선소로 낙점했다. 이에 필리조선소를 인수한 한화오션의 기업가치는 치솟고 있다. 장기적으로 수혜를 입을 것이란 분석에서다.
다만, 김남형 EY-파르테논 파트너는 "최근 조선사들이 호실적을 기록하며 기업가치(밸류에이션)가 치솟고 있지만, 이는 과거 발주가 현재 실적에 반영된 것"이라며 "오히려 전체 선종의 선복량이 증가하면서 신조선 발주량은 주춤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또한 "기업가치가 과도하게 높으면 인수합병(M&A)에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김 파트너는 현재 EY-파르테논 소속의 '턴어라운드 및 구조조정 서비스(TRS·Transaction Restructuring Service)'팀 리더를 맡고 있다. 2010년대 STX 그룹, 한진중공업, 대우조선해양 등 굵직한 조선업 구조조정 과정을 거쳤고, 최근까지도 국내 조선사 인수 및 매각 자문을 맡으며 국내 조선업 구조조정의 역사를 가장 가까이서 목격해 온 전문가다.

김 파트너는 한국 조선사의 경쟁력을 크게 세 가지로 요약했다. 먼저, 고도화된 생산 시스템과 기술력이다. 그는 "한국은 블록화 공법을 발전시켜 선박을 '레고'처럼 정밀하게 만드는 데 강점을 가지고 있다"며 "예를 들어, 큰 블록 두 개를 붙일 때 한국은 30㎜ 내외의 오차로 정밀하게 맞춰내는 설계 역량과 공정관리 역량을 갖추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우수한 설계 인력 및 인프라를 보유하고 있다. 김 파트너는 "조선공학과 같은 대학교 인프라를 통해 우수한 기술 인력을 배출하고 있다" 며 "설계부터 현장 피드백까지 유기적으로 연결된 고도화된 시스템도 마련돼 있다"고 전했다. 특히, 선주 요구에 대한 유연한 대응도 강점이라는 설명이다. 그는 "한국 선사는 선주사들의 요구를 즉각 반영해 주는 유연성을 가지고 있는데, 이도 다른 나라들과의 차별점"이라고 전했다.
김 파트너는 "중국이 데드웨이트톤(재화중량톤수·DWT) 기준으로는 한국보다 2~3배 많지만, 표준 환산톤수(CGT) 기준으로는 아직 한국이 앞서고 있다"며 "이는 한국 조선업이 벌크선 같은 저수익 선종은 포기하고,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과 같은 고부가가치 선종에 집중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전 세계 LNG 수주 물량의 87%를 한국이 차지하고 있다.
다만 "중국도 단순 대형 컨테이너선 등에서는 한국의 기술력을 많이 따라왔으며, 친환경 선박 기술 분야에서도 중국이 기술 개발도 집중하고 있어, LNG 호황이 끝났을 때 중국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지킬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우려했다.
김 파트너는 조선소 매출에 대해서는 보수적으로 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현재 조선사들의 호실적은 2021년부터 최근까지 연간 200척 규모로 쏟아졌던 LNG 선박 발주 물량 증가 및 선가 상승 등의 결과가 반영되는 것"이라며 "당분간 발주 물량이 급격하게 줄어들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되지만, 전체 선종의 선복량이 증가하면서 신조선 발주량은 주춤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파트터는 조선사의 향후 실적 전망이 지금처럼 좋을 것이라는 기대는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선업에는 선주가 지급하는 선수금에 대해 금융기관이 보증하는 '리펀드 개런티(RG)'라는 특수한 제도가 있다. RG는 조선소가 배를 못 만들 경우 은행이 선수금에 이자를 붙여 선주에게 대신 갚아주는 보증서인데, 10조 원의 매출을 올린다면 2~3년 간의 수주 잔고를 고려할 때 조선소에 필요한 보증 규모는 연간 매출액 규모인 10조 원을 훌쩍 뛰어넘게 된다.
김 파트너는 "과거 2010년대 STX 등 중소형 조선소들이 부실화됐을 때, 금융기관들이 RG 보증잔액 때문에 대규모 손실을 감수하고 추가 자금을 투입해 조선소를 정상화시킨 아픈 역사가 있다"며 "이에 은행들은 최근 조선업 호황에 따른 보증 익스포저 증가가 또다시 부실화되는 것을 극도로 꺼리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즉, 과거처럼 은행 보증을 통한 선수금에 의존해 무리하게 사업을 확장하는 것은 한계가 왔다는 이야기다.
특히, 현재 조선사들의 높은 밸류에이션을 경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 파트너는 “최근 조선업 밸류에이션이 역사적으로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고공비행 중인데 오히려 기업가치가 과도하게 높으면 M&A에 장애물로 작용하기도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미국의 '마스가'가 중국의 추격을 받는 한국 조선업에 기회가 될 수 있지만, 수혜로 돌아갈지는 지켜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과거 STX가 크루즈 선박을 만들겠다며 핀란드와 노르웨이 조선소를 인수하고도 기술을 제대로 확보하지 못하고 철수한 바 있다. 또한, 한진중공업도 필리핀 수빅 조선소에 1조 원 이상을 투자했으나 결국 현지화에 성공하지 못했다.
미국은 한국과 달리 조선소 주변의 밸류체인(기자재 및 협력업체)이 원활하게 작동하지 않아, 공정지연과 건조원가 증가가 만성적으로 발생하는 상태다. 대규모 설비투자를 감행한다고 하더라도 우리나라와 같이 체계적인 관리시스템 아래에서 경쟁력 있는 건조원가로 생산하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군함 등 방산 관련 선박의 경우 보안 문제로 인해 한국 기업에 장애물이 되는 사항도 많을 것으로 보인다.
김 파트너는 "조선사는 호황기에 자금을 축적하고, 어려운 시기에 협력업체와 상생하며 물량을 유지하는 안정화 전략이 중요하다"며 "마스가는 물량확보 측면에서 유지·보수·운영(MRO) 등 안정적인 사업을 확보하는 대안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