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이탈·개인 매수 겹치며 단기 수급 압력 증폭…연말 달러 조달도 경색

원·달러 환율이 최근 급등한 배경에는 개인 투자자들의 해외주식 매수가 단기적으로 영향을 준 것이 사실이지만, 이를 '서학개미 탓'으로만 돌리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시장에서는 이번 급등이 개인 수급과 외국인 이탈이 겹친 결과일 뿐, 환율을 높은 수준에서 밀어 올린 진짜 힘은 오래전부터 누적돼 온 해외투자 구조 변화와 금융계정 악화에 있다는 설명이다.
24일 금융업계 등에 따르면 최근 몇 달 환율을 밀어올린 직접적인 트리거는 개인 투자자들의 해외주식 매수세이지만, 현재 환율 레벨을 떠받치는 본질적인 힘은 작년부터 이어진 해외투자 구조 변화와 금융계정 악화에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실제 한국은행에 따르면 거주자의 대외금융자산이 2025년 3분기 말 기준 2조 7976억 달러(한화 약 4113조 원)로 집계됐고, 그중 증권투자 잔액은 1조 2140억 달러(한화 약 1784조 원)로 분기 대비 증가한 상태다.
특히 작년부터 이어진 해외투자 확대가 환율 체력을 근본적으로 바꿔놓은 것으로 분석된다. 거주자의 해외 포트폴리오 투자가 꾸준히 증가하면서 순대외금융자산이 2025년 3분기 말 기준 1조 562억 달러(한화 약 1900조 원)을 기록, 전분기 대비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10월 이후 미국 기술주 조정과 AI 버블 우려가 커지면서 외국인들이 국내 주식 비중을 줄이기 시작했고, 같은 시기에 개인들의 미국 주식 매수세가 다시 급증했다. 그동안 개인들의 달러 환전 수요는 외국인 자금 유입이 일정 부분 상쇄하는 구조였지만, 10월 중순 이후 외국인 자금이 유출로 돌아서면서 두 흐름이 같은 방향으로 겹쳤다. 단기적으로 환율을 끌어올린 1차 요인이다.
여기에 연말 특유의 자금 경색 요인이 얹혔다. 개인 환전 수요가 커지자 시중은행의 원화·외화예금이 동시에 빠져나갔고, 이미 미국 단기 달러 금리 지표(SOFR) 상승으로 달러 조달이 어려운 상황에서 유동성 자체가 얇아졌다. 은행 조달 비용이 오르면 금융시장 내 달러 가격은 빠르게 비싸질 수밖에 없다. 급등 국면에서 나타난 ‘은행권 달러조달 경색’도 단기 환율을 끌어올린 요인이다.
기업들의 해외투자 패턴 변화도 최근 수급 불균형을 키웠다. 해외 법인 운영을 위한 달러 운전자본 수요가 새롭게 발생했고, 기존에 원화 환전 후 투자하던 패턴에서 일정 부분을 외화 형태로 보유하려는 흐름이 강화됐다. 이 역시 금융계정에서 달러 유출을 키우는 구조적 요인이다.
시장 일각에서 연기금의 해외투자가 환율을 끌어올린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지만, 현재 외환시장에서는 연기금이 직접적인 수급 주체로 참여하지 않는 상태다.
결과적으로 최근 몇 달간 환율을 위로 밀어올린 주된 촉발 요인은 개인 해외주식 매수, 외국인 자금 이탈, 은행 유동성 축소, 기업 달러 수요 증가 등이 있지만, 그 아래에는 해외투자 확대, 금융계정 적자, 달러 수급 구조 변화라는 더 큰 흐름이 자리하고 있다. 단기 변동성에만 초점을 맞추면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외환시장 한 관계자는 "최근 국면에서 개인 매수세가 환율을 흔든 건 맞지만, 환율 레벨 자체를 끌어올린 건 국내 경제 주체들의 해외투자 확대와 금융계정 악화라는 구조적 요인"이라며, "단기 흐름 뒤에 있는 구조적 요인을 함께 봐야 시장 대응 방향도 잡을 수 없다"고 설명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