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 주인 등 빠른 사업 시행 촉구
대법 ‘규제완화 허용’ 판결 후 치열
국가유산청 이어 여권 반대 거세져
서울 종묘 앞 세운4구역 재개발 사업과 관련해 대법원이 서울시의 손을 들어줬지만, 주무 부처인 국가유산청과과 문화체육관광부가 '유네스코 세계유산 지정 해제' 가능성까지 거론하며 상황은 전면전으로 치닫고 있다.

갈등의 새 발화점은 대법원의 6일 판결이었다. 대법원은 “보존지역(100m)을 초과하는 지역까지 국가유산청장과 협의해 조례로 정하도록 위임했다고 볼 수 없다”며 서울시 권한을 인정했다.
앞서 서울시는 대법원 선고를 일주일 남긴 지난달 30일 세운 4구역의 건물 높이 기준을 ‘종로변 101m, 청계천변 145m’로 기존 대비 대폭 완화하는 내용의 재정비촉진계획 변경을 고시했다. 이번 대법원 판결은 종묘 인근에 최고 높이 145m 규모 고층 건물을 세우겠다는 서울시의 선언에 대법원이 ‘도장’을 찍어준 격이었다.
하지만 당정의 ‘세운 4구역 개발 반대’ 입장은 대법원 판결 이후 되려 거세졌다. 국가유산청과 문화체육관광부는 반대 이유로 유네스코가 종묘를 세계유산으로 지정할 때 건축물뿐만 아니라 주변 경관을 포함한 ‘통합적 가치’를 인정했다는 점을 강조한다. 여기에 김민석 국무총리까지 가세해 정치 문제로 확장하는 모습까지 보인다. 김 총리는 “고층 건물이 들어선다면 종묘에서 보는 눈을 가리고 숨을 막히게 하고 기를 누르게 하는 그런 결과가 되는 게 아닐까 하는 걱정 된다”고 말했다.
반면 서울시와 개발 찬성 측은 이런 여권의 주장이 ‘과도한 공포 조장’이라고 맞선다. 종묘 정전과 제례라는 본질적 가치와 200m 가까이 떨어진 상업지구의 개발은 양립 가능하다는 것이다. 오히려 1960년대 지어진 세운상가 일대가 낡은 판자촌과 다름없이 방치되면서 종묘의 미관을 해치고 있는 만큼 개발을 가속해야 한다는 논리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11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감성적인 표현이 아니라 과학적으로 얘기해야 한다”며 “법원에서 너무 과도하다, 그럴 필요 없다고 판결을 했는데 이번에는 총리까지 나서서 대법원이 틀렸다, 우리가 법을 새로 만들어서까지 못 짓게 하겠다고 우기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또 오 시장은 “유네스코는 정전이라는 하드웨어와 종묘제례라는 소프트웨어를 묶어 지정한 것이지, 건축물 하나만 보고 하는 게 아니다”라며 “지정 주체(유네스코)는 관심조차 없는 이슈를 가지고 국내에서 정치적 쟁점을 만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서울시와 정부의 세운 4구역 개발을 둘러싼 ‘강 대 강’ 대치가 계속되자 땅 주인과 주변 상인의 속은 타들어 간다. 세운 4구역은 2000년대 초반 재개발 구역 지정 이후 문화재 심의 등으로 사업이 지연되며 20년 가까이 첫 삽을 뜨지 못했다. 2009년 문화재청 심의로 개발 구역 내 건축물 높이가 최고 122m에서 71m 수준으로 깎이며 사업성이 악화하면서 표류했다. 2021년 오 시장 복귀 이후 세운상가 일대 재개발 논의가 재부상했지만 개발은 더디기만 하다.
세운 4구역 토지주들은 ‘역차별’을 지적하며 빠른 사업 시행을 촉구하고 있다. 이들은 19일 입장문을 통해 “세계문화유산인 강남 선정릉은 고층 건물들이 즐비한 강남 핵심 권역 내에 있지만, 2009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며 “세운 4구역은 종묘 정전에서 바라보면 잘 보이지도 않는 측면에 있고, 주 시야각 60도밖에 위치해 잘 드러나지도 않는 지역인데 유독 세운 4구역만 콕 집어 맹목적인 높이 규제를 강제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고 했다. 영국 런던타워나 일본 도쿄 왕궁 주변도 재개발을 통해 고층 빌딩과 문화유산이 공존하는 만큼 유독 세운지구에만 이런 잣대를 들이대선 안 된다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