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러나 홍보비는 그대로 두고 복지부터 손댄 예산편성 기조에 장애계와 학계, 여야 정치권이 동시에 반발하면서 김동연 도정을 향한 역풍이 거세지고 있다.
경기도의회 국민의힘은 21일 의원총회와 기자회견을 열고 내년도 예산안을 “이재명 대통령 호위 예산은 늘리고, 도민 생존예산은 줄인 ‘이증도감’ 예산안”이라고 규정했다.
“도민이 체감할 변화를 위한 예산이라 포장했지만 실제로는 이재명 정부 떠받들기에 몰두한 숫자놀음일 뿐”이라며 김동연 지사를 정면으로 겨냥했다.
고준호 경기도의원(국민의힘, 파주2·도의회 보건복지위원회 부위원장)은 “복지예산 214건, 2440억이 잘려 나갔다”며 “도민 복지를 상대로 한 눈치행정은 결코 용납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고 의원은 “노인복지관 39억, 장애인지역사회재활시설 26억 전액, 중증장애인직업재활시설 25% 감액은 말없는 약자부터 잘라낸 결정”이라며 “이는 조정이 아니라 사실상 포기이며, 사회적 약자를 예산의 최전선에 세운 것”이라고 직격했다.
여권 내부에서도 이례적 비판이 이어진다.
더불어민주당 김병주 최고위원은 “노인상담센터 지원비와 노인복지관 운영비 전액 삭감은 행정편의주의가 노인복지의 가치를 짓밟은 결정”이라며 “노인복지는 시혜가 아니라 존엄을 지키는 최소한의 가치, 예산 삭감은 곧 사회안전망 붕괴”라고 지적했다.
같은 당 강득구 의원은 SNS에 “경기도가 내년도 본예산에서 214건, 2440억원의 복지예산을 싹둑 잘라냈다”며 “민주당 소속 도지사가 복지예산을 대폭 삭감했다는 점에서 충격을 넘어 배신감까지 느낀다”고 썼다.
김 지사가 ‘추경에서 100% 채우겠다’고 해명한 데 대해서도 “물에 빠진 사람에게 ‘기다리면 구명조끼를 던지겠다’는 말과 다를 바 없다”며 “관료 마인드를 버리고 도민 삶의 현장으로 내려와야 예산이 아니라 복지가 보일 것”이라고 꼬집었다.
현장 반발은 더 직접적이다.
한국상담심리학회와 한국상담학회는 공동 성명에서 “도내 노인상담서비스 이용자가 1만6770명에서 3만3640명으로 늘고 만족도도 89.1%에 이르는데, 도가 노인상담센터 예산 전면 중단을 결정했다”며 “상담 사업은 단순 복지가 아니라 노인 정신건강을 지키는 필수 안전망인데, 예산 중단은 취약 노인을 직접적으로 위협하는 조치”라고 경고했다.
경기도장애인자립생활센터총연합회도 경기도의회 앞 기자회견에서 “도내 55개 장애인자립생활센터 도비 지원금이 센터당 6000만원씩 삭감돼 절반 가까운 예산이 날아갔다”며 “경기도가 자립생활 예산을 비용 절감 항목으로 전락시켰다”고 비판했다.
단체는 “장애인자립생활 예산은 시혜가 아니라 권리를 지탱하는 최소한의 약속”이라며 예산 삭감 철회와 김 지사의 공식 사과, 장애인 당사자와의 정례 소통 채널 구축을 요구했다.
도의회 행정사무감사에서도 복지국 예산은 여야를 가리지 않고 도마에 올랐다.
제출된 경기도 복지국 예산안에 따르면 내년 복지 관련 사업 중 전액 삭감된 일몰사업은 64건 240억, 감액된 사업은 150건 2200억이다. 시군 노인상담센터 지원 10억, 노인복지관 운영비 39억, 장애인 지역사회재활시설 26억, 사회서비스원 운영지원 62억, 경기도형 긴급복지 32억, 노인일자리 및 사회활동지원 223억, 경로식당 무료급식·식사배달 10억 등이 줄줄이 목록에 올랐다.
황세주 도의원은 “사회복지시설 환경개선사업 예산이 80% 줄어 대상시설이 60곳에서 12곳으로 줄었다”며 “도민 행복을 망치겠다는 것 아니냐”고 질타했다.
김동규 의원은 “경기도형 긴급복지는 81억에서 32억으로 줄고, 노인일자리사업도 3000억 중 223억이 빠졌다”며 “150개 사업에서 2200억이 줄어 현장은 대상자를 해고하고 사업을 접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우려했다.
윤태길 의원은 시군 노인상담센터 지원 중단 공문을 언급하며 “경기도가 31개 시군을 정책 파트너가 아니라 지시만 기다리는 산하기관처럼 대하고 있다”며 “어떤 협의도 없이 ‘도비 지원을 끊을 테니 자체 사업으로 하라’는 통보는 일방적이고 강압적인 소통”이라고 지적했다.
기획재정위원회에서도 “복지분야 일몰 64개, 삭감 150개로 의원들이 전화·방문 민원에 시달릴 정도”라며 “노인·장애인 예산에는 인건비까지 포함돼 있는데, 이것이 김동연 지사가 말한 ‘민생 중심 예산’이냐”는 질책이 이어졌다.
논란이 정점으로 치닫는 가운데 장애인단체들이 21일 도청 앞 복지예산 삭감 규탄 집회를 준비하자, 경기도는 이날 오전 경제부지사 명의 긴급 기자회견을 전격 예고했다.
고영인 경제부지사는 브리핑에서 “노인상담센터 지원비, 노인복지관 운영비 등 필수불가결한 예산이 온전히 반영되지 못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며 “복지현장의 혼란과 우려에 깊이 공감한다. 죄송하다”고 공식 사과했다.
고 부지사는 “경기도 집행부는 의회와 적극 협력하고 복지 관련 단체들과 긴밀히 협의해 필수 불가결한 예산이 복원되도록 하겠다”며 “김동연 지사가 심각성을 인지하고 복원률을 최대한 높이라는 지침을 줬다”고 밝혔다.
이어 “삭감된 예산은 최대한 복구하고, 추후 집행이 가능한 사항은 추경을 통해 반영하겠다”며 “경기도에 복지 후퇴가 없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다만 해명 과정에서 중앙정부 탓과 숫자 논리를 앞세운 대목은 논란을 더 키운다는 지적도 나온다.
고 부지사는 “윤석열 정부의 역주행 여파로 경제가 어려워지고 세수 확보가 줄어들면서 경기도 재정상황이 나빠졌다”고 말하며 “국비가 늘면서 도비 매칭이 3049억 정도 증가해 자체사업에 7500억 안팎 압박이 생겼고, 이 영향이 전 실국에 미쳤다”고 설명했다.
경기도는 “복지예산 총액은 7.1% 늘었고, 일몰·통합 과정에서 현장과의 협의가 충분치 못했을 뿐 복지 후퇴는 아니다”라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정치권과 현장은 “복지예산은 나중에 ‘메우면 되는 돈’이 아니라 한번 끊기면 되살리기 어려운 생명선”이라는 점을 거듭 경고한다.
장애계와 복지단체들은 “예산 공백이 길어질수록 당사자의 삶과 도정 신뢰에 남는 상처가 더 크다”고 우려하고, 도의회는 “세수가 부족했다면 홍보비·행사성 예산부터 줄였어야 한다”며 “취약계층 예산을 먼저 손댄 판단 자체가 문제의 출발점”이라고 지적한다.
복지예산 2440억 삭감, 노인·장애인·긴급복지 사업 214건 일괄 감액, 여야와 현장의 연쇄 반발, 그리고 뒤늦은 경제부지사 사과와 ‘복원’ 약속까지.
경기도가 “복지 후퇴는 없다”는 말을 설득력 있게 만들려면, 스스로 잘라낸 예산부터 언제·어떻게 되돌릴 것인지부터 증명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숫자를 앞세운 해명만으로는 이미 흔들린 ‘민생·복지 도정’의 신뢰를 회복하기 어렵다는 것이 현장의 냉정한 평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