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체계 정비 더뎌⋯고교 금융과목 편성 격차 심화
금융문해력 하락·보이스피싱 확산…청년층 위험 커져

금융 환경이 디지털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조기 금융교육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그러나 금융 습관이 자리 잡는 청소년기부터 위험 노출이 확대되는 현실과 달리 정부 차원의 교육 체계는 여전히 제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청소년·청년층을 중심으로 스캠·과금형게임·고위험투자 같은 디지털 금융 리스크가 빠르게 번지는 가운데 “위험은 커지는데 교육은 따라가지 못한다”는 우려가 거세지고 있다.
16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위원회가 관계기관과 함께 2021년부터 운영해 온 금융교육협의회는 매년 정례 회의를 열고 있으나 실효성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회의가 현황 공유에 그치는 경우가 많고 논의가 후속 정책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지적이 반복된다. 금융교육협의회는 올해도 4월에 한 차례만 개최됐을 뿐 추가 논의는 이어지지 않았다. 청소년 금융 위험이 빠르게 증가하는 상황을 고려하면 정책 조율을 담당하는 정부 협의체가 충분히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학교 교육 현장에서도 금융교육 인프라는 여전히 취약하다. 금융위는 고등학교 정규 교육과정에 ‘금융과 경제생활’ 과목을 2026학년도부터 새로 도입한다고 밝혔지만 이는 현재 교과 과정에 금융·투자·신용관리 등 핵심 개념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다는 현실을 보여준다.
게다가 과목 도입이 교육 효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학교별 편성률이 안정적으로 확보돼야 하지만 2025년 지역별 고교 편성안에서는 지역 간 격차가 뚜렷하게 나타났다. 서울(75.0%), 부산(86.7%) 등 대도시는 비교적 편성이 이루어진 반면 전남(21.3%), 대전(30.2%) 등 일부 지역은 20~30%대에 머물렀다. 같은 국가 교육과정임에도 지역·학교별 편차에 따라 학생의 금융교육 접근성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이 드러난 셈이다.
금융교육의 실효성을 확보하려면 ‘금융과 경제생활’을 선택과목이 아닌 필수과목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요구도 있다. 현재는 사회과 선택과목 중 하나로 편성돼 학교가 과목을 개설하지 않으면 학생들이 수강할 수 없는 구조다.
금융교육 정책 공백은 지표에서도 확인된다. 한국은행과 금융감독원이 2년마다 전국민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조사에 따르면 2024년 금융이해력 점수는 65.7점으로 2022년(66.5점)보다 낮아졌다. 세부 항목에서는 인플레이션·구매력 이해 등 기초 경제지식이 전반적으로 하락했고 재무관리 항목도 낮아졌다.
특히 청년층의 금융문해력 저하가 두드러진다. 20대의 금융이해력 점수는 62.6점으로 전 세대 중 하락폭이 가장 컸다. 재무점검(33.2점), 장기 재무목표 설정(36.1점) 등 일부 금융행위 항목에서는 고령층보다 점수가 낮았다. 금융정보 취득 경로에서도 유튜브·소셜미디어(SNS) 등 비정형 콘텐츠 의존도가 크게 증가하며 청소년기 정규 교육을 통해 기초 개념을 충분히 습득하지 못한 청년층이 위험 거래에 취약한 구조가 심화되고 있다.
문제는 금융 사기가 갈수록 진화하며 세대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는 점이다. 경찰청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보이스피싱 피해액은 6421억 원으로 지난해 연간 피해액의 75%를 넘어섰다. 피해 금액 1억 원 이상 고액 사례는 전년 대비 150% 넘게 증가했다. 20대 이하 피해 비중(23.9%)은 60대에 이어 두 번째로 높아 금융문해력 저하와 디지털 환경이 결합하며 피해 양상이 달라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전문가들은 금융교육이 단순한 경제 지식을 전달하는데서 그치는 것이 아닌 청소년·청년층의 금융범죄 예방 장치로써의 역할이 강화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 금융교육 전문가는 “금융위험이 디지털 기반으로 빠르게 전환되는 만큼 일회성 강의나 기존 오프라인 교육만으로는 대응하기 어렵다”며 “실물 교육 자재 중심의 정규 교육 과정과 지역 기반 금융교육을 연계한 국가 단위 시스템을 통해 세대별 금융 위험을 체계적으로 관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