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코로나19 팬데믹을 계기로 상용화한 ‘원격의료’ 서비스가 민간 플랫폼 업체들의 이윤 극대화 수단으로 변질될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의약계 전문가들은 제도와 서비스의 주도권을 영리기업이 아닌, 정부가 쥐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4일 서울 영등포 국회에서 의료민영화저지와무상의료실현을위한운동본부(무상의료운동본부)는 대한약사회, 대한의사협회, 한국중증질환연합회 등이 참석한 가운데 ‘영리 플랫폼 중심 원격의료 법제화, 이대로 괜찮은가?’정책 토론회를 열고 법제화 과정의 문제점을 짚었다.
현재 국회에는 원격의료를 법제화하기 위한 의료법 개정안이 다수 발의돼 있다. 김윤 더불어민주당 의원 안은 비대면진료 권역을 신설해 권역 밖 진료는 금지하며, 서영석 더불어민주당 의원 안은 재진만 비대면진료를 허용한다. 또한 보건복지부도 원격의료의 기본 틀을 규정하는 대안을 냈다. 정부는 비대면진료 제도화를 국정과제로 꼽았으며, 국회도 올해 정기국회 내 관련 의료법 개정안을 처리한다는 계획이다.
문제는 의료의 상업화를 막을 장치가 법안에 충분히 포함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향후 플랫폼 업체들이 급격히 성장하면 과도한 수익 추구와 업체 간 경쟁이 붙어 과잉진료와 상업적 진료가 만연할 것이라는 우려다. 이는 건강보험 재정 누수로 이어질뿐 아니라, 의사와 약사 등 전문직역이 플랫폼 업체에 예속되는 환경을 조성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무상의료운동본부는 “배달의 민족이나 카카오택시가 해당 시장의 지배적 플랫폼으로 떠올랐듯, 의료에 지배 플랫폼이 등장하면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며 “원격의료 플랫폼은 기술 혁신으로 새로운 가치를 추가로 생산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플랫폼 업체의) 수익은 환자 주머니나 건강보험 재정에서 나올 수밖에 없다”라고 지적했다.
원격의료는 영리성과 개인정보 유출 문제가 없는 공공 플랫폼을 통해 제공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플랫폼이 의료기관과 환자들에게 폭리를 취하거나, 민간 기업이 개인의 민감한 의료정보를 축적하지 못하도록 차단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정형준 건강권실현을위한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위원장(원진녹색병원 원장)은 “플랫폼 업체들은 초기에는 시장 장악력을 확보하기 위해 무료 서비스로 미끼를 던지지만, 일정 기간이 지나면 중개 수수료, 구독비 등을 받으며 영리화한다”라며 “실제 소아과 진료 예약 시장에서 시장 장악력을 갖춘 병의원 예약 앱 ‘똑닥’은 7여년 동안 무료로 운영하다가 2023년 9월부터 유료 서비스로 전환했다”라고 말했다.
의료서비스의 질적 하락을 방지할 제도적 수단도 필요하다. 김충기 대한의사협회 정책이사(이대서울병원 순환기내과 교수)는 “기술적 품질을 유지하려면 민간의 자율성과 발전 의지를 존중할 필요가 있지만, 이를 통제하고 관리할 전문가 기반의 제도장치가 있어야 한다”라며 “의료 전문가 단체를 중심으로 플랫폼의 인증, 관리, 평가를 수행하며 부적절한 의료행위를 모니터링해 제지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진료뿐 아니라, 진료 이후 처방과 조제 과정도 공공 플랫폼을 통해 진행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플랫폼 업체들이 특정 약국에서 약을 구매하도록 환자들을 유도하거나, 약국을 대상으로 가맹비를 걷는 등의 불공정 행위가 나타날 위험이 있어서다.
장보현 대한약사회 정책이사는 “플랫폼 업체들은 제휴·가맹 약국에 처방을 몰아주고 수익을 보장하는 방식으로 영업해 약국이 무한 경쟁 속에 울며 겨자 먹기로 제휴하게 될 수 있다”라며 “환자의 약국 선택에 영향을 미치는 구조를 만들지 못하도록 처방 전송 등을 위한 공적 플랫폼이 필요하며, 원격의료 플랫폼 규제 관련 법률에 진료비뿐 아니라 약품비도 노출을 금지하는 조항을 마련해야 한다”라고 제언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