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LB그룹이 글로벌 자산운용사 LMR 파트너스(LMR Partners)와 2000억 원대 투자 계약을 체결하면서 국내 바이오업계와 자본시장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바이오 투자 경색을 깨고 대규모 해외 자본이 유입됨에 따라 항암제의 미국 식품의약국(FDA) 신약 허가 추진이 더욱 탄력을 받는 것은 물론 업계에도 훈풍을 불러올 것이란 기대가 나온다.
4일 업계와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HLB그룹은 LMR 파트너스와 1억4500만 달러(약 2069억 원) 규모의 투자 계약을 체결했다. LMR 파트너스가 운용하는 ‘LMR 멀티-스트래티지 마스터 펀드 리미티드(LMR Multi-Strategy Master Fund Limited)’와 ‘LMR CCSA 마스터 펀드 리미티드(LMR CCSA Master Fund Limited)’가 50%씩 투자하는 방식이다. HLB는 1억4000만 달러 규모의 신주인수권부사채(BW)를, HLB생명과학은 500만 달러 규모의 HLB 교환사채(EB)를 인수한다.
HLB가 확보한 총 1억4000만 달러 중 15%는 즉시 현금 유입되고, 85%는 HLB 명의의 해외 계좌에 에스크로 예치된다. BW는 연 5% 단일금리 비분리형이며, 발행 1년 후부터 신주인수권 행사가 가능하다. 또 주가가 발행가 대비 115% 이상 달성될 경우 HLB가 강제 전환 또는 행사를 요청할 수 있는 조건이 포함됐다.
특히 투자자가 주식 전환을 못 할 경우 원금 및 이자 상환을 요청하는 풋옵션은 발행 후 3년 이후부터 가능하도록 설계돼 최악의 경우에도 향후 3년간은 재무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다.
이번 투자는 국내 신약 개발 바이오기업의 글로벌 위상과 가능성을 인정받은 사례로 평가된다. 경영권 인수 목적이 아닌 순수 투자 형태로는 2010년 셀트리온 이후 15년만의 첫 대규모 투자다.
당시 셀트리온은 테마섹홀딩스의 100% 자회사 아이온 인베스트먼트 B.V를 대상으로 제3자 배정 유상증자를 통해 약 2079억 원의 자금을 유치하고, 테마섹은 셀트리온 지분 약 10%(약 1233만 주)를 확보했다. 이 투자금은 셀트리온의 첫 바이오시밀러 ‘램시마’의 글로벌 임상과 송도 공장 상업 생산 능력 확충 등에 쓰이면서 세계 최초 바이오시밀러 허가로 이어지는 실질적 자금 기반이 됐다.
그 과정에서 해당 투자가 해외 자본 유입의 마중물로 작용, 이후 글로벌 자본시장의 접근성도 한층 높아졌다.
HLB그룹 역시 간암·담관암 신약의 미국 FDA 허가 신청을 앞둔 시점에 해외 자본으로부터 대규모 자금이 유입됐단 점에서 이 같은 성장 궤도를 따를 것이란 관측이 이어진다. 자금 운용의 안정성이 높아지며 FDA 허가와 상업화 준비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춰진 만큼 성과에 대한 긍정적 전망도 확대되고 있다.
HLB는 2026년 간암과 담관암 적응증으로 항암제 2종의 FDA 허가가 목표로 글로벌 항암제 보유사로의 도약을 노리고 있다. 아울러 간암 치료제 허가를 기반으로 선낭암·흉선암 등 희귀 고형암 영역에서 미국종합암네트워크(NCCN) 가이드라인 등재를 추진해 적응증 확대에도 나설 계획이다.
회사 관계자는 “지난해 하반기 글로벌 금융기관을 주관사로 3억 달러 규모의 투자를 논의했으나, 12·3 사태로 환율이 급등하면서 무산된 바 있다”라면서 “이번 투자 역시 정관상 신주인수권부사채(BW)와 전환사채(CB) 발행 한도가 제한적이라 투자자 측의 더 큰 투자 의향을 모두 반영하지는 못했다”고 설명했다.
이번 투자는 국내 바이오산업 전반의 투자심리가 위축된 가운데 이뤄졌다는 점에서도 눈길을 끈다. 해외 재무적 투자자(FI)가 국내 상장 바이오기업의 성장 가능성에 베팅하면서 업계 전반에 긍정적 신호를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바이오 투자는 최근 일부 회복 흐름을 보이지만, 2021년 투자 호황기와 비교하면 아직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 주식·전환사채(CB) 발행 등 외부 자금 확보 건수도 절반 수준으로 줄어들어 임상 후기 단계 기업들조차 자금난에 시달리는 상황이다.
업계 관계자는 “해외 재무적 투자자의 대규모 투자가 이뤄졌다는 점은 국내 바이오 산업에 대한 글로벌 신뢰가 여전히 유효하다는 방증”이라며 “이번 사례가 침체한 바이오 투자 시장 분위기를 전환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