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닛·KAIST 등 산·학·연·병 약 30여 곳 참여
향후 추가 과제 및 산업에 긍정적 영향 기대

엔비디아가 한국에 26만 장 규모의 그래픽처리장치(GPU)를 우선 공급하기로 하면서 의료 인공지능(AI)과 제약·헬스케어 산업이 AI 인프라 확충의 수혜를 받을 전망이다. 정부의 국가 전략사업과 산업계의 대형 AI 프로젝트가 맞물리며 GPU를 중심으로 한 ‘AI 연구 패러다임 전환’이 본격화되고 있다.
3일 제약·바이오업계에 따르면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최근 의과학·바이오 분야에 특화된 ‘AI 파운데이션 모델’ 개발 사업에 루닛-한국과학기술원(KAIST) 컨소시엄을 선정했다. 이번 사업은 2025년 11월부터 2026년 9월까지 진행되며 두 컨소시엄에는 엔비디아 최신 GPU가 각각 256장씩 지원된다. 이번 사업은 정부가 직접 GPU 인프라를 제공해 의료·바이오 특화 AI 모델을 개발하는 것이 핵심이다.
루닛 컨소시엄은 ‘의과학 전주기 혁신’을 목표로 분자·단백질·오믹스 데이터부터 임상 지식까지 아우르는 대형 파운데이션 모델을 구축한다. 루닛을 비롯해 SK바이오팜, 카카오헬스케어, 아이젠사이언스 등 7개 기업과 KAIST, 서울대 등 6개 대학 연구팀, 국민건강보험공단 일산병원, 경희의료원 등 9개 의료기관이 참여해 총 23개 기관이 협력한다. 이들은 개발된 모델을 기반으로 임상의사결정지원시스템(CDSS), 지능형 의생명 연구 파트너, 건강 챗봇 등 6가지 응용 서비스를 선보일 예정이다.
이 중 SK바이오팜은 중추신경계(CNS) 질환을 중심으로 AI 신약개발 및 디지털 트윈(가상 임상시험) 모델을 개발한다. 화합물·단백질 데이터와 실제 환자 데이터를 활용해 신약 후보물질 탐색부터 임상 설계, 효능 예측까지 AI 기반 연구 체계를 구현할 계획이다.
KAIST 컨소시엄은 ‘바이오 파운데이션 모델 K-Fold’ 개발을 주도한다. KAIST를 중심으로 히츠, 머크, 아토랩, 한국제약바이오협회, 한국바이오협회 등이 참여하며 기존 알파폴드3가 통계적 경향성에 의존한다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인과구조 기반의 물리·화학적 학습 모델을 개발한다. 이를 통해 단백질의 동적 구조 변화와 결합력을 정량적으로 예측할 수 있는 실용적 AI 모델을 확보하는 것이 목표다.
이 컨소시엄은 70억 파라미터(7B)급 대형 모델과 20억 파라미터(2B)급 경량 모델을 병행 개발해 접근성을 높이고 완성된 모델을 오픈소스 및 서비스형 소프트웨어(SaaS) 형태로 공개해 연구자 누구나 활용할 수 있도록 한다. 또한 글로벌 제약사 머크의 ‘디지털 케미스트리 솔루션’ 플랫폼과 연계해 국제 신약개발 생태계와 협력을 확대하고 국내 협회들과 함께 AI·생명과학 인력 양성 프로그램도 추진할 계획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GPU 공급과 정부 과제가 단순한 기술 지원을 넘어 ‘의료AI를 통한 국가 AI 주권 확보 실험’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국내 데이터로 학습한 대형 모델이 상용화되면 해외 의료AI 플랫폼에 의존하지 않고 자국 기술로 임상 의사결정과 신약 개발을 수행할 수 있어서다.
컨소시엄에 참여하는 AI 신약개발 기업 대표는 “의료AI와 신약개발 AI는 각각 의료 현장과 연구개발의 효율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전공의 수준의 지식을 갖춘 AI가 의료진을 지원하고 스스로 연구를 수행하는 AI 연구자가 등장하면서 24시간 신약개발이 가능한 시대가 열릴 것”이라며 “이번에 새롭게 GPU를 확보함에 따라 향후 과제가 끝나도 기간이 연장될 수 있고 다른 과제가 시행될 가능성도 있다”고 전망했다.
또 다른 의료AI 기업 관계자는 “이번 과제는 기존 GPU를 활용해 진행되지만 이를 계기로 의료AI와 신약 개발 관련 국책사업이 앞으로 더욱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며 “이 같은 흐름은 산업 전반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