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수 포화…F&B 매물 늘어도 거래 종결률↓
자본력 갖춘 대기업 F&B, 감각·의사결정 느려

K-컬쳐 확산과 함께 K-푸드가 뛰고 있다. 라면·김·간편식(HMR) 수출이 사상 최대치를 경신하고, 프랜차이즈 브랜드들의 해외 진출도 늘면서 식음료(F&B) 산업이 새로운 인수·합병(M&A) 시장 전선으로 부상했다. 하지만 겉으로 보이는 인기와 달리, M&A 시장에서 진짜 승부는 '브랜드가 아닌 사업 구조에 있다'라는 분석이 나온다.
삼정KPMG 딜 자문(Deal Advisory) 부문에서 중견·소비재 딜을 이끌고 있는 박송학 상무는 "F&B에서 일부 유행 요소는 있지만, 핵심은 아니다. 재구매를 동반한 구조적 수요가 형성됐다"며 "실제로는 제조·유통·브랜드·소비가 맞물린 구조 산업이다. 트렌드는 빠르게 바뀌지만 시장은 남는다"고 말했다.
박 상무는 2012년 삼정KPMG 입사 후 감사본부에서 커리어를 시작했다. 이후 밸류에이션(기업가치 평가) 부서를 거쳐 베트남 오피스에서 2년간 근무하며 현지 기업의 세무·법률·재무 자문을 총괄했다. 그는 LG·삼성 협력업체 등 제조기업 밀집 지역에서 시장 대응력과 협상 경험을 쌓았다고 회상했다. 이 경험은 M&A 자문 역량 자산이 됐다.

박 상무는 K푸드의 수요 기반을 '콘텐츠-커뮤니티-재구매'의 3단 고리로 해석했다. 유튜브·틱톡 같은 소셜미디어네트워크(SNS)에서 개인들이 직접 참여해 만드는 요리·먹방 콘텐츠가 소비를 자극하고, K-컬쳐 팬덤이 오프라인 체험으로 연결되면서 재구매가 축적되는 구조라는 것이다.
그는 "1980년대 일본 이자카야 문화가 세계로 퍼져나가 자리 잡았듯, K푸드도 문화화 단계에 진입했다"라며 최근 F&B 산업이 일시적 유행을 넘어 구조적 성장 국면에 들어섰다고 평가했다. 다만 F&B 업종 특성상 브랜드의 유효기간이 짧다는 점도 강조했다. 그는 "대중 브랜드는 5년을 넘기기 어렵다. 메뉴, 콘셉트, 채널을 끊임없이 갱신해야 수명이 연장된다"고 했다.
최근 2~3년간 국내 F&B 매물은 유례없이 늘었지만, 거래 종결률은 낮다. 코로나19 이후 창업형 프랜차이즈들이 금리 인상과 소비 둔화 속에 매각으로 돌아서며, 매물은 넘치지만 클로징(거래 완결)은 어려운 시장 구조가 형성됐다.
박 상무는 "명륜진사갈비, 역전할머니맥주 등과 같은 프랜차이즈 거래가 이어졌지만, 내수는 이미 포화 상태"라며 "브랜드 생명 주기가 짧고, 가맹점 교체 주기가 빨라 예전만큼 거래 완결이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투자자들의 관심은 브랜드보다 밸류체인으로 이동하고 있다. 그는 "지금 시장 중심은 브랜드 인기가 아니라, 반복 수요를 창출할 수 있는 밸류체인 구조"라며 "소스·HMR 같은 원재료 제조 기업은 브랜드가 흔들려도 수익이 유지되는 구조적 체력을 갖췄다"고 분석했다.

사모펀드(PE) 업계의 F&B 투자 전략도 변하고 있다. 박 상무는 "이전에는 프랜차이즈 하나를 사서 몸값을 올린 뒤 되파는 식이었지만, 지금은 유사 브랜드를 묶는 '롤업(Roll-up)' 전략이 늘고 있다"라며 "예컨대 A 브랜드를 10배 멀티플에 인수한 뒤, 소규모 B 브랜드를 5배 밸류로 더해 묶으면 전체 밸류에이션을 끌어올릴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변화는 밸류체인 결합이다. 프랜차이즈 본사가 소스·원재료 업체를 인수해 원가와 품질을 통제하는 전략이다. 그는 "이러한 구조는 브랜드가 바뀌어도 마진이 유지돼 수익 안정성이 높다"라고 전했다. 다만 그는 "운영 복잡성과 브랜드 피로도가 높아질 경우 역효과가 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대기업 F&B 시장 진출이 확대되고 있지만, 자본력만으로는 성과를 내기 어렵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박 상무는 "대기업은 자본력과 유통망은 갖췄지만, F&B는 감각 산업으로 메뉴 구성과 소비자 경험이 매출을 좌우한다"고 말했다.
이어 "대기업은 모든 걸 시스템화하려 하지만, F&B는 라이프사이클(생존 주기)이 짧다. 시장 반응을 실시간으로 읽어야 하는데, 의사결정이 느리면 바로 소비자와 괴리가 생긴다"며 "유통 통합으로 원가를 줄여도 브랜드 정체성이 무너지면 매출은 떨어진다"고 강조했다.
박 상무는 "결국 감각과 실행력이 자본보다 중요하다. 대기업이 글로벌 브랜드를 들여와도 지속적인 성공을 거두지 못하는 이유"라고 짚었다. 그는 다만 "그럼에도 F&B 사업은 여전히 잠재적 성장 동력으로 여겨지기 때문에 대기업의 F&B 인수합병 흐름은 계속될 것"으로 전망했다.
내수시장 한계 속에서 F&B 기업들의 해외 진출은 필수적이라고 봤다. 박 상무는 “국내에서 설득되지 않는 모델은 해외에서도 통하지 않는다"며 "해외 투자자에게 프리미엄 밸류를 받으려면 '성장 스토리를 숫자로 증명할 수 있는 구조'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말이 아니라 매출·이익·성장률 등 실적으로 성장성을 입증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는 "글로벌 PE 등 해외 투자자들은 단순히 K푸드의 인기를 보지 않고 직접 한국 오피스 실사를 진행해 현지화 계획, 품질 관리, 데이터 기반 운영 역량을 중시한다"라며 "구조를 갖춘 기업만이 글로벌 밸류를 인정받는다"고 강조했다.
내년을 F&B 시장 재편의 해로 봤다. 박 상무는 "소비 양극화로 가성비형 HMR과 프리미엄 다이닝만이 살아남을 것"이라며 "무인매장·AI 맞춤 식단·서빙로봇 등 푸드테크 확산이 산업 구조를 재편할 것"이라고 했다.
끝으로 박 상무는 "F&B는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 문화"라며 "딜마다 산업이 달라지고, 트렌드가 이동해도 결국 시장은 남는다. 반복 수요와 해외 확장성을 동시에 확보한 기업이 다음 사이클의 주인공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