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대출 규제로 실수요자 ‘자금 절벽’ 가속
KDI “총량 억제 대신 정교한 관리 필요”

정부의 연이은 가계대출 규제로 인한 ‘후폭풍’이 거세다. 대출 총량 관리 강화와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가 맞물리면서 차주들의 신용점수와 대출금리가 동반 상승하는 등 대출 문턱이 높아져 ‘내집 마련’을 준비해 온 실수요자들이 직격탄을 맞았다.
21일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에서 지난 8월 분할상환 주택담보대출을 받은 차주의 평균 신용점수는 950점(KCB 기준)으로 전년 (939점)보다 11점 높아졌다. 같은 기간 신규 주담대 평균 금리도 연 3.60%에서 연 4.10%로 올랐다.
이러한 흐름은 '6·27 대책' 이후 더욱 뚜렷하게 나타났다. 대책 이전인 5월 신규 주담대 차주의 평균 신용점수는 942.6점이었으나 8월에는 7.4점 상승했다. 같은 기간 신규 주담대 평균 금리도 연 3.94%에서 연 4.05%로 뛰었다.
이는 가계부채 증가세를 억제하기 위한 고강도 대출 규제가 시행되면서 나타난 결과로 풀이된다. 정부는 지난 6월 27일 ‘가계부채 관리 강화방안’을 통해 수도권과 규제지역의 주담대 한도를 축소하고 하반기부터 은행의 가계대출 총량 관리의 목표 규모를 기존 계획의 절반 수준으로 줄였다.
‘9ㆍ7 대책’에 이어 최근 ‘10·15 대책’에서는 수도권·규제지역 내 주담대에 한해 스트레스 DSR 가산금리 하한을 1.5%에서 3.0%로 높였다. 사실상 스트레스 DSR 4단계에 돌입한 것으로 해석된다. 향후 금리 인하로 발생할 수 있는 차주별 대출한도 확대 효과마저 차단하겠다는 뜻이다.
일부 시중은행은 이미 대출 여력이 한계에 이르면서 실수요자들의 대출 절벽 현상은 한층 더 심화할 것으로 보인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금융감독원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5대 은행 중 NH농협은행과 신한은행의 올해 가계대출 증가액은 금융당국에 보고한 ‘연간 대출 증가 목표(경영계획 기준 정책성 상품 제외)’를 초과한 상태다. 하나은행과 KB국민은행도 각각 목표 대비 95%, 85% 수준까지 찼다. 은행들은 대출모집인 채널을 통한 접수를 잇달아 중단하고 있다.
은행권 관계자는 “하반기 들어 대출 한도가 절반으로 줄고 가계대출 관리 대책이 잇따르면서 막차 수요가 몰렸다”며 “작년 말에 총량 목표를 맞추기 위해 비대면 창구를 닫거나 우대금리를 축소한 사례가 있는 만큼 올해도 연말까지 긴장을 늦추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고강도 대출 규제가 단기적으로는 가계부채 증가 폭을 잡는 데 효과적일 수 있지만 대출 시장의 양극화와 실수요자 피해를 키울 수 있는 만큼 정책적 보완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김미루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임의의 총량 목표를 설정해 이를 중심으로 관리하는 방식의 가계부채 정책이 불필요한 마찰과 높은 조정비용을 초래하는 등 의도하지 않은 시장 왜곡을 초래할 수 있다”며 “자금 흐름을 과도하게 제약하기보다 차주의 상환능력 평가와 금융기관의 거시건전성 유지를 중심으로 정책을 설계하고 운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