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공조·인터폴 한계…"상대국 의지에 좌우돼"

국내 청년들이 일자리를 찾아 캄보디아로 향한 뒤 현지 범죄조직의 표적이 되고 있다. 취업난에 밀려 해외로 나서지만, 범죄가 발생해도 보호망은 허술하다. 수사기관은 "국경 밖에서는 손쓸 방법이 없다"며 국제 공조 강화의 필요성을 호소했다.
20일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법무부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캄보디아로 출국한 한국인이 매년 수천 명 규모로 귀국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출국·입국자 수 차이는 2021년 113명에서 2022년 3209명, 2023년 2662명, 2024년 3248명으로 급증했다. 올해도 1∼8월 기준 864명이 되돌아오지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
단순 장기 체류로 볼 수 있는 수준을 넘어, 귀국하지 않는 한국인이 누적되면서 범죄에 취약한 상태로 내몰리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외교부에 따르면 올 8월까지 캄보디아에서 취업 사기 이후 감금을 당했다며 한국 공관에 들어온 신고는 330건으로 집계됐다. 지난해에는 220건이었다. 이 중 올해 인원 260여 명, 지난해 210명은 '종결' 처리됐지만 약 80명의 안전이 확인되지 않은 상태다.

최근에도 전국 각지에서 가족이 캄보디아로 출국한 뒤 연락이 끊겼다는 신고가 이어졌고, 경남에서는 20대 남녀가 고수익 취업 광고에 속아 캄보디아로 갔다가 현지 조직에 감금된 뒤 몸값을 지불하고 풀려난 사례도 있었다. 피해자 상당수는 국내에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해외로 향한 청년층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우리 국민이 해외에서 범죄 피해를 당해도 한국 수사기관이 신속히 개입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앞서 캄보디아에서 한국인 대학생이 납치·살해된 사건이 발생했을 때도, 경찰은 가족의 감금 신고를 받고 외교부를 통해 현지 경찰에 협조를 요청했지만 소재를 끝내 확인하지 못했다.
이후 피해자가 숨진 채 발견됐고, 신원 확인 뒤에도 시신 인도와 수사자료 공유는 두 달 가까이 지연됐다. 경찰은 "양국 협의 과정에서 캄보디아 측이 형사사법공조를 공식 요청하면서 시간이 지체됐다"고 설명했다.
현재 한국 경찰이 해외 범죄 피해에 대응할 수 있는 수단은 △형사사법공조(사법공조) △국제형사경찰기구(인터폴) 요청 등 두 가지다. 사법공조는 국제형사사법공조법 29조에 따라 경찰이 검사를 통해 법무부와 외교부를 거쳐 상대국 외교·법무부로 요청서를 전달하는 방식이며, 인터폴 공조는 같은 법 38조에 근거한다.
그러나 두 방식 모두 강제력이 없어 현실적으로 작동이 어렵다는 것이 현장 수사 관계자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사법공조는 문서 송달과 번역, 외교 절차를 거치느라 시간이 오래 걸리고, 이 과정에서 수사의 골든타임을 놓칠 가능성이 크다. 인터폴 요청 역시 가입국 간 자발적 협조를 전제로 해, 상대국의 의지가 없으면 수사로 이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공조 수사 경험이 많은 한 검찰 관계자는 "사법공조는 절차가 길어 IP(인터넷 프로토콜) 추적 같은 긴급 사건은 이미 늦는 경우가 많다"며 "상대국이 공조 요청을 받더라도 수사 여부는 그들의 판단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국가별 법체계의 차이도 공조의 걸림돌이다. 이 관계자는 "사법공조는 양국에서 모두 범죄로 인정돼야 원활하게 진행된다"며 "국내에서는 범죄로 보더라도 상대국 법에 처벌 규정이 없으면 협조가 이뤄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특히 캄보디아 등 동남아시아 국가는 협조가 쉽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인터폴 업무에 정통한 한 경찰 관계자는 "행정 체계가 미비할 뿐 아니라 현지 수사기관의 법 집행 의지도 약하다"며 "(상대국) 정부가 단속 의지를 보이지 않으면 수사가 어렵다"고 토로했다.
법적·제도적 한계로 인해 결국 외교력의 역할이 필수적이라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유엔(UN) 사이버범죄방지협약이나 부다페스트 협약처럼 국제 공조를 원활하게 할 수 있는 협약에 가입해야 한다"며 "협약에 가입하면 수사 공조가 지금보다 실효성 있게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경찰 관계자는 "협조가 이뤄지지 않는 국가에는 공적개발원조(ODA) 지원을 중단하고 여행금지국으로 지정하는 등 외교적 압박도 필요하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를 청년층의 불안정한 노동 환경과 해외 취업 알선 구조의 무관리 상태가 맞물린 구조적 문제로 진단, 정부 차원의 통합 대응 체계 강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명예교수는 "국내에서 안정적인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청년들이 '돈을 벌어야 한다'는 절박함 속에 탈법적 일자리로 내몰리고 있다"며 "이번 사태를 계기로 외교부와 고용노동부가 청년 해외 일자리 정책을 공동으로 관리하는 통합 체계를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