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번 국가 전산망 기능 마비를 두고 “3년 전 ‘카카오톡 먹통’ 사태가 정부 버전으로 재연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3년 전 판교 데이터센터 화재로 ‘카카오톡 먹통’이 벌어졌을 당시 정부는 카카오 측에 다중화 클라우드 서버 구축 등 강도 높은 대비책을 요구했다. 그러나 정작 정부 시스템은 재난 상황에 제대로 대비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국정자원은 현재 대전을 메인센터로, 대구와 광주에 각각 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메인센터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아, 대전 본원에 장애가 발생하면 곧바로 전국 단위 서비스 마비로 이어지는 구조다. 이번 사태에서도 대전 화재가 곧바로 행정·금융·물류·민원 시스템 중단으로 직결됐다.
무엇보다 국가 차원의 백업체계가 사실상 부재했다는 점이 치명적이다. 2022년 카카오 사태 때도 이중화 시스템 부재가 뼈아픈 교훈으로 지적됐지만, 이번에는 민간이 아닌 국가 전산망이 똑같은 약점을 드러냈다. “정부가 민간 기업보다도 뒤처진 재난관리 수준을 보였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이유다. 정부에 따르면 대전 본원 외 지역 분원에 데이터 백업 체계가 갖춰져 있었지만, 이를 실제로 가동할 장비가 부족해 복구가 지연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행정안전부 관계자도 “센터 간 백업체계를 갖추고 있지만, 데이터를 돌릴 시스템 장비가 있어야 하는데 예산 측면에서 관련 장비 여유분을 갖추기가 빠듯했다”고 설명했다.
글로벌 주요국이 이미 클라우드 기반 분산 저장과 재해복구 체계를 강화하는 데 비해, 한국은 여전히 ‘한곳에 몰아넣는’ 방식에 머물러 있다는 점도 문제로 꼽힌다. 미국, 유럽, 일본 등은 주요 국가기관 데이터를 다중 분산 저장하고, 장애 발생 시 즉각 다른 센터로 전환해 서비스 연속성을 보장하는 체계를 표준으로 삼고 있다.
이번 사태는 단순한 IT 사고가 아니라 국가 시스템 리스크의 민낯을 보여준 사건이다. 전화국이나 일반 건물을 개조해 데이터센터로 쓰는 구조적 한계, UPS·배터리 등 화재 위험 요소와 서버실이 뒤섞인 물리적 배치, 백업·재해복구 시스템의 형식적 운영 등이 모두 겹쳐 대혼란을 키웠다. 시스템이 존재하더라도 실전 점검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위기 상황에서 무용지물이 될 수밖에 없다.
최운호 서강대 교수(전 정부 정보화담당관)는 “국가 핵심 인프라의 안전성을 담보하려면 데이터센터 전용 건물로의 이전과 같은 근본적인 재설계가 필요하다”며 “UPS나 배터리 같은 위험 설비의 분리 배치, 리튬 배터리 전용 소화설비 설치, 정례적인 자동 전환 훈련 의무화가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