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 DR센터 표류…예산·정치 논리에 막혀
안전보다 비용 우선, 국민 피해로 되돌아와

대전 국가정보자원관리원(국정자원) 화재로 국가 전산망이 일제히 마비되면서, 정보 시스템 이중화 조치 미비가 일을 키웠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2022년 '카카오 먹통 사태'를 일으킨 판교 데이터센터 운영관리 도구 이중화 공백이 행정부 버전으로 되풀이됐다는 자조가 나오는 이유다.
특히 재난·재해 등으로 인한 먹통 사태로부터 국가 전산자원과 시스템을 보호하는 국정자원 백업센터(공주센터)가 2012년 사업이 시작되고 13년째 문을 열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면서, 예견된 '인재(人災)'라는 지적이다.
28일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국가 전산망의 고질적 노후화와 이중화(백업) 미흡, 그리고 수년간 이어진 예산 줄다리기가 이번 사고의 ‘예고된 배경’이었다.
국정자원 대전 본원은 2005년 준공 이후 20년 가까이 핵심 업무를 떠안아 왔다. 문제는 클라우드 전환이 가속한 뒤에도 동일 부지·동일 건물 의존도가 높았다는 점이다. 특히 백업 서버가 같은 단지에 상주하는 등 ‘동일 재난 취약 영역’을 완전히 끊어내지 못했다.
이중화·삼중화가 상식이 된 민간 데이터센터와 달리, 정부 클라우드는 부처별 DR(재난복구) 수준이 제각각이었다. 백업 데이터는 보관했으나 실시간 시스템 전환이 불가능해 결국 전체 서비스가 멈춰버린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가 단순한 화재가 아니라 '정부판 카카오 먹통'이라고 지적한다. 2022년 판교 데이터센터 화재 당시 카카오는 카카오톡을 비롯한 서비스 대부분을 판교 센터에 의존하고 있던 터라 전 국민이 며칠 동안 불편을 겪어야 했다.
당시 정부는 민간기업 카카오에 강력한 다중화 대책을 요구했지만, 정작 정부 스스로는 대비를 소홀히 했다는 비판이다. 제대로 된 전산망 이중 장치가 있었다면, 전산실 1개에 불이 났다고 해서 행정 서비스가 마비되는 일은 없었을 거라는 얘기다.
각종 재난에 대비하기 위한 ‘쌍둥이 백업센터’ 공주 DR센터가 10년 넘게 완공되지 못한 점도 이번 사태의 핵심 원인이다. 공주 DR센터는 2008년 계획이 처음 세워진 뒤 2012년 사업이 본격화됐다. 그러나 예산 삭감, 계약 유찰, 사업비 조정 등으로 지연이 반복됐다.
건물 공사는 11년이 지난 2023년에서야 끝났지만, 전산환경 구축은 새로운 행정전산망 장애 대책과 기재부 총사업비 협의 절차에 막혀 또 늦춰졌다. 이에 지난해 편성된 251억 원 예산도 집행되지 못한 채, 2025년 예산안에는 16억 원만 편성됐다. 그 사이 대전 본원은 노후화 리스크가 켜켜이 쌓였다.
IT 보안 업계 한 관계자는 "이번 사건은 최근 각종 해킹 사태에서도 드러났듯이 안전과 보안보다 비용을 우선한 결정이 어떻게 피해로 이어지는지를 보여줬다"며 "이제 필요한 것은 책임 규명과 안전 중심의 예산 재편성"이라고 말했다.
클라우드 업계 한 관계자 "인공지능(AI) 시대로 진행될수록 데이터센터 운영이 정보 흐름의 혈관과도 같아지는데 비상 상황 대비 등에 대한 전면적인 검토가 필요해 보인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