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봇이 산업현장을 넘어 이젠 주거 공간으로 들어왔다. 골목길을 지나 엘리베이터를 타고 현관 앞까지 배달을 오는가 하면, 입주민이 차를 대충 세워두면 주차 로봇이 바퀴를 들어 올려 자리를 찾아간다. 생활 저변에 AI 기반 로봇 기술이 일상의 일꾼으로 자리 잡으며 주거 단지와 일상 서비스의 풍경이 빠르게 달라지고 있다.
16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삼성물산 건설부문은 최근 자율주행 로봇 스타트업 뉴빌리티와 협업해 아파트 단지 입주민을 위한 실외 배송 로봇 ‘딜리픽미(Dilly Pick Me)’를 시범 운영하고 있다. 서울 서초구 ‘래미안 리더스원’ 단지에 투입된 이 로봇은 인근 상가에서 음식이나 커피를 픽업해 횡단보도와 골목길을 지나 집앞까지 자율주행으로 배송한다. 앱으로 주문만 하면 로봇이 알아서 움직이며 별도 조작이나 호출 과정 없이 전 과정을 무인으로 처리한다.
기존 자율주행 로봇이 실내 또는 제한 구역에서만 운행됐던 것과 달리 딜리픽미는 규제 샌드박스를 벗어나 도로에서의 실운행까지 가능해진 첫 사례 중 하나다. 위치 인식에는 GPS와 카메라, 라이다 센서가 활용되며 보행자 속도에 맞춰 이동하고 충돌 방지 알고리즘도 탑재됐다.
현대건설은 한발 더 나아가 아예 단지 설계 단계부터 로봇 운용을 고려한 '로봇 친화형 단지'를 구현하고 있다. 지난달 입주를 시작한 '디에이치 대치 에델루이'에는 실내외 통합 자율주행 배송 로봇 시스템이 적용됐다. 로봇은 단지 입구부터 지하주차장, 공동현관, 엘리베이터, 가구 앞 현관까지 전 구간을 스스로 이동하며 배송을 수행한다.

현대건설은 특히 압구정 2구역 재건축 단지에 현대자동차그룹 로보틱스랩, 현대로템, 현대위아 등 그룹사 역량이 총동원한다. 현대건설은 이 단지를 '완전 자율주행 로봇'이 이동 가능한 스마트시티로 조성한다는 계획을 제시했다. 로봇은 단지 밖 도로에서 지하주차장과 엘리베이터를 거쳐 세대 앞까지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도록 설계된다.
현대차·기아의 수요응답형 무인 셔틀 서비스 ‘셔클’도 도입된다. 실시간으로 승객 수요를 파악해 유동적으로 운행 경로와 시간을 조정하는 이 시스템은 단지 내 교통 효율성을 높인다. 쇼핑이나 외출 후 짐이 많은 입주민을 위해 맞춤형 퍼스널 모빌리티 로봇도 등장할 예정이다. 이 로봇은 소형 자율주행 플랫폼을 기반으로 안면 인식 기능을 탑재해 사용자의 짐을 세대 앞까지 안전하게 배송한다.
자율주행 로봇은 물류나 이동 지원에만 머물지 않는다. 현대로템은 단지에 무인 소방 로봇을 투입할 계획이다. 열화상 카메라와 특수 장비를 갖춘 이 로봇은 고온·유독가스 등 소방 인력의 진입이 제한된 화재 현장에서 선제 대응이 가능하다. 충전 구역에서는 로봇이 전기차의 충전구를 스스로 열고 충전을 진행한 뒤 완료되면 자동으로 케이블을 분리해 차주에게 알림을 전송한다.

HDC현대산업개발 역시 송파한양2차 아파트 재건축 단지를 필두로 첨단 로봇 기술 도입에 속도를 내고 있다. 회사는 이 단지에 AI 기반 자율주행 주차 로봇 ‘파키(Parkie)’를 국내 최초로 도입한다. HL로보틱스와 협업한 파키는 운전자가 차량을 지정 구역에 세우면 차량 하부로 진입해 바퀴를 들어 올리고 빈 공간을 찾아 스스로 주차한다. 특급호텔의 발렛파킹 서비스를 로봇이 대신 수행하는 셈이다.
출차 시에는 입주민이 앱이나 월패드로 호출하면 차량이 자동으로 출차 구역에 대기한다. 이 시스템은 접촉사고나 ‘문콕’ 우려를 없애고 주차 공간 효율성도 30% 이상 높일 수 있어 여유 공간은 커뮤니티 시설이나 녹지로 활용 가능하다.
고령화 사회에 대응한 시니어 돌봄 로봇도 속속 보급되고 있다. 삼성물산은 최근 '래미안 원베일리'와 실버타운 '삼성노블카운티' 입주민을 대상으로 '홈 AI 컴패니언 로봇' 실증 사업을 시작했다. 로봇은 음성 인식 기반으로 작동하며 대화를 통한 감정 교류부터 복약 알림, 웨어러블 연동 건강 관리, 응급상황 시 보호자 알림 등 다양한 기능을 수행한다.
김민석 상명대 휴먼지능로봇공학과 교수는 “로봇은 이제 단순한 산업용 기계를 넘어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생활 동반자’로 변모하고 있다”며 “AI가 사람의 감정과 상황을 읽는 수준까지 발전하면서 로봇은 주거 서비스 전반에서 점차 친밀한 파트너로 자리매김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