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자 신설·쿼터제 확보 등 조언

미국 내 한국 기업 근로자 구금 사태를 계기로 정부의 비자 문제 대응이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기업들은 수년 전부터 숙련 인력이 안정적으로 근무할 수 있는 확실한 제도 마련을 요구해왔지만, 정부가 관행적 대응에 머무르면서 이번 사태를 불러왔다는 지적이 나온다.
14일 김영배 더불어민주당 의원(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여당 간사)이 외교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7월까지 기업들은 다섯 차례에 걸쳐 정부에 비자 발급 지원을 요청했다. LG에너지솔루션과 현대자동차 등 미국 현지 공장을 운영하는 주요 기업들은 기획재정부, 산업통상자원부, 국민신문고 등을 통해 비자 발급 애로, 입국 거부 사례, 대체 방안 마련 등을 꾸준히 제기했다. 외교부는 발급 시 유의사항 안내에 그쳤다.
기업들은 정부가 수년간 문제를 인지하고도 개선에 나서지 않았다고 비판한다. LG에너지솔루션은 미국 배터리 공장 착공 전부터, 현대차는 현지 전기차 생산 확대 과정에서 비자 문제를 지속적으로 제기했지만 개선은 없었다는 것이다.

업계에선 이번 사태가 ‘예고된 문제’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특히 한·미 정상회담 때마다 정부가 기업의 미국 투자를 독려하면서도 인력 비자 문제는 외면해왔다는 비판이 거세다. 한 제조업 관계자는 “이스타 비자 발급 거부 비율이 최근 몇 년 새 눈에 띄게 늘었다”며 “정부에 꾸준히 문제를 제기했지만, 정상회담에서 논의된 적은 없다”고 말했다.
LG에너지솔루션은 미시간주에서 독자 공장을 운영 중이며, 제너럴모터스(GM)와 합작 법인을 오하이오·테네시주에서, 혼다와 합작 공장을 오하이오주에 건설 중이다. 수년간 대규모 투자를 이어왔지만 정부로부터 실질적인 해결책은 받지 못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정부가 보다 적극적인 외교적 역할을 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는 “비자 문제가 풀리지 않으면 우리가 약속한 미국 현지 투자도 차질이 불가피하다”며 “정부는 안일한 태도를 버리고 미국과 확실한 협의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대안으로는 비자 신설이나 쿼터 확보 방안이 거론된다. 싱가포르·호주 등은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해 현지 취업비자 쿼터를 확보한 사례가 있다. 뒤늦은 대응보다 선제적 제도 정비가 필요하다는 주문이다.
이경희 법무법인 에스엔 미국 변호사는 “B-1 비자는 출장 범위를 벗어난 것으로 오해받을 소지가 크다”며 “2013년 한국 정부가 요청했던 전문직 비자 E-4와 1만5000개 전문직 비자 쿼터제 도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제도적 장치 마련 이후에는 미국 정부와 상시 소통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조언도 나온다. 문종철 산업연구원 경제안보·통상전략연구실 연구위원은 “미국 파견 전 미국 대사관을 통해 비자 체류 자격을 확실히 확인하고, 국토안보부가 문제를 제기하지 않도록 협력을 강화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