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공지능(AI)이 과학기술정보통신부를 부총리급 부서로 승격시켰다. 배경훈 장관이 과기부총리를 겸임하며 과학기술·AI정책을 총괄하게 된다. 배 장관은 AI를 등에 업고 40대·비정치인·기업 출신 장관에 이어 부총리라는 타이틀까지 쥐게 됐다. 이에 따라 2008년 과학기술부가 교육부에 통합되며 폐지됐던 과기부총리제가 17년 만에 부활했다.
역대 부총리 대다수가 관료·학자·정치인 출신이었던 것과 달리 배 장관은 삼성탈레스·SK텔레콤·LG 등 민간기업에서 경력을 쌓은 AI 전문가다. 정부가 기업 현장의 감각을 국정 운영 투톱 체계에 직접 투입한 건 사실상 처음이다. 한 AI 업계 관계자는 배 장관을 “40대 기업 임원으로서 업무 추진력이 있으면서도 독단적으로 일하지 않고 함께하는 스타일”이라고 말했다.
민간 기업 출신의 배 장관이 부총리를 겸임하는 것을 두고 업계에선 ‘AI 산업에 국가가 힘을 실어주겠다는 메시지’라며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이에 더해 대통령 직속의 국가AI전략위원회도 공식 출범하면서 AI 3대 강국 도약 추진에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범국가 AI 전략 컨트롤타워인 위원회는 △국가 AI 비전·중장기 전략 수립 △정책과 사업의 부처 간 조정 △정책 이행 점검과 성과 관리 등 막중한 임무를 맡았다. 이 대통령이 직접 위원장직을 맡으며 13개 부처 장관급 인사가 정부위원으로 참여한다.
위원회는 결정 사항에 대한 속도감 있는 집행과 부처 간 업무 조율‧조정을 지원할 국가인공지능책임관협의회를 구성해 AI 생태계를 개편한다. 국가인공지능책임관협의회는 각 부처 차관급 공무원인 인공지능책임관으로 구성되며 대통령실 AI미래기획수석비서관이 의장을, 국가인공지능전략위원회 지원단장이 간사 역할을 수행할 예정이다. 이에 따라 하정우 AI미래기획수석비서관과 배 장관이 AI 정책을 어떻게 추진하고 조율할지 주목된다.
일각에서는 하 수석과 배 장관의 AI 정책 방향성이 다를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는 하 수석과 배 장관이 몸담고 있던 기업의 특성과 연결된다. LG AI연구원이 자체 개발한 거대언어모델(LLM) ‘엑사원(EXAONE)’은 B2B(기업 간 거래), 네이버의 LLM ‘하이퍼클로바X’는 B2C(기업과 소비자 간 거래)에 집중한다. LG는 제조업·신약 개발 등에 특화된 모델을 개발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네이버는 우리나라 데이터를 학습해 한국어를 잘하는 모델을 만드는 데에 방점을 찍고 있다.
AI 전문가들은 어떤 AI로 가든지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우리나라의 데이터를 학습한 소버린 AI가 다른 나라에서 쓰이지 않는다면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신용태 숭실대 컴퓨터학부 교수(SW중심대학협의회장)는 “하 수석과 이재명 대통령은 소버린 AI 개발에 중점을 두고 있지만, 배 장관은 ‘피지컬(물리적) AI’ 쪽도 강조하고 있다”며 “우리나라가 잘하는 제조업 쪽에 AI를 특화시켜야 글로벌 경쟁력이 생기지 않겠냐”고 말했다.
방향성을 설정하려면 현재 추상적인 AI 3대 강국에 대한 정의를 명확히 해야 한다. 어떤 AI을 키워 국가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지난 8일 발표한 ‘인공지능(AI) 3대 강국 도약을 위한 양손잡이 전략’ 보고서에서 막대한 자본을 투자해 시장에서 높은 성과를 내는 동시에, 자국의 상황에 맞는 AI 시장 환경을 조성하는 양손잡이 전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