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찍만으로는 안전 못 지킨다 [데스크시각]

입력 2025-09-04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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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철강·화학 등 이른바 ‘중후장대’ 산업이 연이은 사고로 긴장에 휩싸였다. 최근 한화오션 거제조선소에서 브라질 국적 감독관이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해양플랜트 인도 직전 설비를 점검하던 중 구조물이 흔들리며 바다로 추락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고로 한화오션은 당일 오전 8시부터 12시까지 작업을 전면 중단했다. 같은 날 LG화학 온산공장에서는 유독 물질에서 연기가 피어올라 직원들이 긴급 대피했고, 포스코 역시 광양제철소와 포스코이앤씨에서 사망자가 이어지며 회장이 직접 ‘그룹안전특별진단TF’를 신설했다.

이번 한화오션 사고는 사망자가 소속 노동자가 아닌 해외 선주사 측 감독관이었음에도 정부가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여부를 검토하면서 업계의 불안감을 키우고 있다. 법 적용 경계가 모호해 사고가 터질 때마다 기업은 형사처벌 가능성부터 따져야 한다. 이는 경영진의 안전 의식을 환기하는 효과도 있지만, 지나치게 처벌에 치우치면 현장은 불안만 커진다. 안전이 본래 목적이 아니라 ‘법적 리스크 관리’로 축소될 수 있다.

실제로 조선업계 산업재해는 늘고 있다. 근로복지공단 자료에 따르면 국내 주요 조선 3사의 사고성 산재 승인 건수는 2020년 315건에서 2024년 702건으로 4년 새 두 배 이상 증가했다. 숫자만 보면 기업이 안전을 소홀히 한 듯하지만, 현장은 다르다. 업계 관계자들은 “경영진이 직접 현장을 돌며 점검하고, 막대한 비용도 투자하지만 쉽지 않다”고 토로한다. 기업들이 설비를 늘리고 관리 체계를 강화하고 있지만, 산재는 쉽게 줄지 않는다.

그런데도 사회적 시선은 사고가 나면 곧바로 “기업 책임”으로 모인다. 물론 안전 관리 의무를 철저히 해야 하지만, 형사처벌 일변도의 접근은 위험하다. 안전은 채찍만으로 확보되지 않는다. 공포가 아니라 자발적 개선과 투자 분위기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선 당근책도 병행돼야 한다. 안전 설비에 투자한 기업에 세제 혜택이나 규제 완화 같은 인센티브를 줄 수 있다. 투자액을 경영평가나 공공입찰에서 가점 요인으로 삼는 방법도 있다. 노동자 교육이나 안전관리 인력을 늘린 기업에 대해선 정부가 지원 프로그램을 마련할 수도 있다. 단순히 사고를 줄이지 못하면 처벌한다는 식이 아니라, 안전 투자가 기업 경쟁력으로 이어진다는 긍정적 신호를 줘야 한다.

기업들도 변화에 나서고 있다. 정기선 HD현대 수석부회장은 4일 전남 영암 HD현대삼호중공업을 찾아 “안전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치”라고 강조했다. HD현대는 전 계열사 최고경영자(CEO)들이 동시에 안전 점검에 나서고, 2030년까지 3조5000억 원을 투자해 ‘더 세이프 케어(The Safe Care)’ 프로그램을 그룹 전반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안전 강화에 나서고 있는 만큼, 사회 역시 이들의 노력을 ‘처벌 대상’이 아닌 ‘격려와 지원의 주체’로 바라봐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안전이 곧 비용이 아니라 미래 산업 경쟁력이라는 인식이 사회 전반에 자리 잡는 일이다.

안전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절대 가치다. 그러나 그것을 달성하는 길은 공포가 아니라 신뢰와 동기 부여다. 법과 제도가 방향을 제시하더라도, 결국 현장을 움직이는 힘은 사회적 합의와 문화적 변화에서 나온다. 지금 필요한 것은 채찍만 휘두르는 강요가 아니라, 기업과 근로자 모두가 안전을 투자 가치로 인식하고 움직이게 만드는 합의다. 처벌에 위축된 현장보다, 인센티브로 활력을 얻은 현장이 더 안전하다. 스포츠에서도 질책이 많은 팀일수록 실책은 늘고, 부상 선수만 많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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