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13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나라재정 절약 간담회를 주재하고 있다. 2025.8.13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연합뉴스 )](https://img.etoday.co.kr/pto_db/2025/08/20250813122915_2211704_655_437.jpg)
공공기관의 존재 이유는 이름 그대로 '공공성'에서 찾을 수 있다. 사기업과 달리 영리 추구와 공공의 이익이 충돌한다면 공리를 우선에 두는 것이 공공기관의 임무다. 그렇다고 국민의 혈세를 방만하게 사용해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신의 직장' '철밥통' 등은 공공기관의 현주소와 이를 바라보는 대중의 시선을 단적으로 대변하는 단어들이다. 몇몇 공공기관은 국민 입장에서 무슨 차이인지 조차 알 수 없는 경우도 흔하다. 특정 업무를 수행하는 공공기관을 찾으려면 'OO공사' 'OO공단' 'OO기술원' 'OO진흥원' 중 어디를 찾아야 할지 헷갈리는 식이다. 이재명 정부가 칼을 빼든 공공기관 통폐합이 단순한 숫자 줄이기가 아니라, 공공부문의 지속 가능성을 위한 개혁으로 방향을 잡아아하는 이유다. <편집자 주>
'당기순손실 3조2000억 원. 부채비율 180%, 경영평가 4등급 이하 28%'.
자산 1150조 원, 종사자수 42만명인 거대 경제주체 '공공기관'의 경영성적표다.
이재명 정부가 '방만 경영'이라는 비판이 끊이지 않는 '공룡 공기업’ 구조조정에 나서는 근거다. 대통령실은 비서실장을 팀장으로 하는 공공기관 개혁 태스크포스(TF)를 꾸려 발전 공기업, 한국토지주택공사(LH), 고속철도(KTX·SRT), 금융 공공기관을 중심으로 통폐합과 기능 조정을 추진하기로 했다. “공공기관이 너무 많아 숫자를 셀 수 없다”는 이재명 대통령의 발언이 신호탄이 됐다. 정부는 공공기관의 방만 경영을 지적하며 강도 높은 개혁의 불가피성을 강조하고 있다.
24일 기획재정부 공시에 따르면 2024년 말 기준 국내 공공기관은 331곳이며, 임직원 정원은 42만 3000명 수준이다. 기관장 평균 보수는 1억9100만 원으로 1년 사이 2.6% 증가했다. 직원 평균 보수는 7200만 원이었는데, 1년 전(2023년)보다 2.6% 늘었다. 반면 공공기관 전체 부채는 741조 5000억 원으로 평균 부채비율은 180.6%에 달했다. 부채 규모는 1년 사이 31조 8000억 원 늘었다. 같은 기간 전체 331개 기관 중 산업은행·수출은행·기업은행을 제외한 328개 기관의 자산은 1151조 9000억 원이었다. 이 때문에 공공기관 부채가 사실상 ‘숨겨진 국가채무’로 재정건전성의 뇌관이 됐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이 대통령은 13일 나라 재정 절약 간담회에서 “공공기관도 대대적으로 손질할 때가 됐다”며 통폐합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어 20일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이 대통령께서) 오늘 또 별도 지시를 했다”며 “인공지능(AI) 시대에 맞게 공공기관의 역할을 재정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한전과 발전 자회사 구조 개편, KTX·SRT 통합, 금융 공공기관 기능 조정 등을 구체적 검토 대상으로 제시했다.
첫 타깃은 발전 공기업이다. 대통령실은 한국전력공사와 젠코(발전 공기업)의 구조 문제를 ‘선수와 심판이 함께 뛰는 체제’로 규정했다. 한전이 전력 시장의 운영자이자 판매자 역할을 동시에 맡으면서 시장 왜곡과 비효율을 초래한다는 것이다. TF는 전력 산업 구조 개편을 통해 재생에너지 중심의 신전력 체제에 맞는 새로운 역할 분담 방안을 모색할 예정이다.
LH 역시 구조조정 1순위다. 국토교통부는 이르면 8월 말 LH 개혁 TF를 별도로 출범시켜 조직과 기능을 대폭 재편할 계획이다. ‘토지와 주택의 원스톱 공급 체계’를 앞세워 출범했지만, 부동산 투기 사태와 반복된 내부 비리로 국민 신뢰를 잃은 만큼 조직 슬림화와 기능 축소가 불가피하다는 분석이다.
고속철도 운영체계 개편도 거론된다. 현재 코레일이 운영하는 KTX와 SR이 운영하는 SRT는 선로·요금·좌석 경쟁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소비자 편익과 운행 효율 측면에서 비효율이 적지 않다는 지적이 꾸준했다. 대통령실은 관련 부처와 함께 통합 타당성을 따져본 뒤 최종 결정할 방침이다.
금융 공공기관도 예외가 아니다. 산업은행, 기업은행, 신용보증기금, 기술보증기금 등 유사 기능을 가진 기관이 난립하면서 효율성이 떨어지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돼왔다. TF는 이들 기관을 기능별 그룹으로 묶어 재편하거나 거버넌스 단일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문제는 이번 개혁이 실질적인 성과를 거둘 수 있느냐다. 역대 정부마다 공공기관 개혁을 외쳤지만 대개 용두사미로 끝났다. 정권마다 ‘낙하산 인사’ 수요가 넘쳐나고, 노조 반발이 거셌기 때문이다. 오히려 ‘시대 변화에 맞춘다’라는 명분으로 새로운 공공기관이 생겨나거나 기존 기관의 몸집이 불어난 경우도 많았다. 2020년대 들어서만 10여 개의 신규 공공기관이 신설됐다. 지방 분산을 강조하면서도 본부가 서울에 있는 경우가 적지 않아 국가균형발전 원칙에도 어긋난다는 비판이 뒤따른다.
대통령실은 TF 첫 회의를 이르면 8월 말 개최하고 9월 중순 국무회의에 중간 보고할 예정이다. 이후 각 부처가 개혁안을 마련해 국회에 법 개정안을 제출하는 수순으로 이어질 전망이다.
넘어야 할 산은 한 두개가 아니다.
사전 검토와 정책 설계 단계에서는 300개가 넘는 공공기관의 업무와 재정상태, 인력 구성 등을 모두 분석해 통폐합 대상을 선정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중복·비효율적 기능을 가진 공공기관을 식별하고 통폐합 필요성을 평가하는 잣대가 무엇인지부터 정해야 한다. 방향과 대상이 정해지면 법을 고치고 예산을 편성하는 단계가 이어진다. 공적 기관은 대통령의 말 한 마디로 합치고 쪼갤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 등 법적 근거를 마련하고 예산을 정비해야 하며, 필요한 경우 기관 간 업무 재배치 및 통합을 위한 양해각서(MOU)도 체결해야 한다.
모든 행정 절차를 마치고 새로운 조직 체계로 전환하려면 인력 재배치와 자산 정리, 시스템 통합 등이 뒤따르게 된다. 개혁 과정에서 일부 부처와 공공기관 노조의 저항은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구조조정이 방만 경영을 근절하고 재정 건전성을 높이는 ‘성공 모델’로 자리 잡을지, 또 다른 미완의 개혁으로 남을지는 TF의 설계와 실행력에 달려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