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사 추가 지원 불가피할 전망
공동 대주주 또다시 대립 여지

여천NCC가 가까스로 부도 위기를 넘겼지만, 근본적인 유동성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공동 대주주인 한화그룹과 DL그룹 간 다툼이 반복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17일 업계에 따르면 DL케미칼은 14일 긴급 이사회를 열고 자회사 여천NCC에 대한 1500억 원 규모 자금을 대여하기로 결정했다. 앞서 DL케미칼은 11일 이사회를 열어 2000억 원 규모 유상증자를 결정했는데, 14일 이사회에서 유상증자 자금 사용처를 여천NCC로 확정했다.
여천NCC는 1994년 DL케미칼과 한화솔루션의 나프타분해시설(NCC)을 통합해 설립됐다. 국내 에틸렌 생산능력 3위 기업으로 한때 연간 3000억 원에서 1조 원대 이익을 내는 등 기간산업 핵심 역할을 해왔다. 에틸렌은 각종 석유화학 제품의 기초 원료로 ‘석유화학 산업의 쌀’이라고 불린다.
그러나 여천NCC를 비롯한 석화 업계는 2020년대부터 본격화된 중국발 공급 과잉 직격탄을 맞았다. 2022년부터 2024년까지 3년 연속 영업 적자를 기록했다. 올해 1분기에도 영업 손실 497억 원을 냈다.
앞서 3월 한화솔루션과 DL케미칼은 각각 1000억 원씩 여천NCC에 증자를 진행했다. 이후 6월 여천NCC는 또다시 양측에 1500억 원씩 총 3000억 원의 증자 또는 자금 대여를 요청했다. 이에 한화솔루션과 DL케미칼은 태스크포스(TF)팀을 꾸리고 자금 지원을 논의해왔다.
한화솔루션은 지난달 말 DL케미칼에 여천NCC에 1500억 원씩을 추가 출자하자고 먼저 제안했다. 추가 자금 지원에 미온적이던 DL케미칼이 결국 입장을 선회하면서 여천NCC는 당장 눈앞의 불은 껐다. 그러나 한화와 DL그룹은 수 차례 보도자료를 내 상대방을 비난하며 다툼의 불씨가 여전한 상황이다.
양사는 여천NCC에서 공급 받는 에틸렌과 CR41 등 원료 가격과 조건을 정하는 협상 과정에서 계속해서 불화를 보여 왔다. DL은 여천NCC의 자생을 위해 가격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단가로 에틸렌을 거래해 왔으나, 한화는 여천NCC가 손해 볼 수밖에 없는 가격을 고수한다고 주장한다. 또 “한화는 올 초부터 대주주 의무를 망각하고 여천NCC 외 다른 석유화학회사와 에틸렌 구매를 위해 접촉하는 등 여천NCC의 어려움을 가중하고 있다”고도 비난했다.
반면 한화는 오히려 DL 측이 지난 25년간 에틸렌을 더 저렴한 가격으로 가져가면서 올해 초 국세청 세무조사에서 추징액을 1006억 원 부과 받았다고 반박에 나섰다.
DL과 한화는 여천NCC 적자 해결법에 대해서도 의견이 다르다. 한화는 단계적 감산을 통한 재무구조 개선이 우선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DL은 에틸렌 단가 인상 등 장기 대안이 필요하다고 본다.
현재 여천NCC 재무상황을 살펴보면, 6월 말 기준 여천NCC가 보유한 단기차입금 및 유산스(Usance·외상거래)는 약 8954억 원이다. 하반기 중 만기 도래하는 회사채 및 장기차입금은 1988억 원, 2026년 중 만기 도래하는 차입금은 5175억 원에 달한다.
적자가 지속 중인 점과 1조 원 규모의 단기차입금을 고려하면 업황 부진이 이어질 경우 그룹사의 추가 지원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한국신용평가는 “이번에는 가까스로 부도 위기는 넘겼지만 자체 자금조달능력이 취약해진 상황에서 현금 흐름 개선 이뤄지지 않을 경우 유동성 대응 능력에 대한 우려가 지속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정경희 LS증권 연구원도 “단기간 내 업황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부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고 진단했다.
만약 여천NCC가 자금 조달 요구를 다시 한다면, 한화-DL간 갈등이 또 외부로 표출될 수 있는 셈이다. DL케미칼 측은 “이제 공은 여천NCC로 넘어갔다”며 “차후에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여천NCC는 자구책을 잘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여천NCC뿐만 아니라, 석화 업계 전반적으로 위기 의식이 심각하다. LG화학은 최근 경북 김천공장 전체와 전남 나주공장 일부 설비를 스크랩(철거) 하기로 결정했다. 석화 기업들은 각자 비주력 사업이나 자산을 매각해 현금 확보에 분주하다.
업계에서는 정부에 빠른 지원책을 요구하고 있다.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도 이를 의식한 듯, 구조 개편에 대한 정부 방침을 이달 중 내놓겠다고 밝혔다. 김 장관은 “업계가 합심해 설비조정 등 자발적인 사업재편에 참여해야 한다”면서 “무임승차하는 기업은 범부처가 단호히 대응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