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 공포 엄습…인력·안전·문화의 삼중고 [위기의 산업현장 ①]

산업현장이 심각한 위기와 맞서고 있다. 경영환경 악화 속에서도 안전을 위한 시스템을 만들고 관리를 강화하고 있지만 사고가 되풀이된다. 인력의 고령화와 외국인 의존 확대는 사고 위험을 구조적으로 높이고 생산성은 떨어뜨린다. 뿌리 깊은 안전불감증도 예기치 않은 사고를 만든다. 산업현장의 현실을 살펴보고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한 해법을 찾아본다.

떨어지고 무너지고 또 무너지고 떨어지고…

산업계가 '사고 공포증'에 시달리고 있다. 정부가 어느 때보다 강경한 대응을 예고한 가운데 현장에서의 사고가 잇따르고 있어서다. 안전관리를 더욱 강화하고 있지만 사고를 원천 차단하는 것은 불가능해 두려움과 불안이 커지는 모습이다.

19일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중대 재해에 대한 건설업계의 긴장감은 최고조에 달했다. 정부가 중대 재해 처벌 강화를 천명하고 있어 자칫 잘못하다가는 경영상 타격을 넘어 사업을 접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산업현장의 사망사고와 관련해 강경한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이 대통령은 12일 국무회의에서 "후진적 산재 공화국을 반드시 벗어나도록 해야겠다"며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말했다.

앞서 중대 재해 사고가 반복된 포스코이앤씨에 대해 건설 면허 취소, 공공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란 지시도 내렸다.

이에 국토교통부와 고용노동부, 기획재정부 등 관련 부처는 내부 검토에 들어갔다. 경찰과 노동부는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압수 수색을 하는 등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은 14일 20대 건설사 최고경영자(CEO)를 소집해 건설 현장에서 잇따른 사망사고와 관련해 진짜 원인을 규명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 장관은 "안전 수칙 위반이나 중대재해 발생 시 다양한 경제적 제재 방식을 정부에서 논의 중"이라며 "이런 조치들이 단순히 기업 옥죄기로 받아들여져서는 안 된다"라는 경고도 했다.

정부가 엄격한 태도를 보이다 보니 건설사들도 사고와 관련해 특단의 대응을 하고 있다. 포스코이앤씨는 사장을 그룹 안전책임자인 송치영 사장으로 교체했고 인프라 분야 신규 수주 활동을 중단했다.

이달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하청 업체 근로자가 추락해 숨지는 사고가 발생한 DL건설은 강윤호 대표이사를 포함한 전 임원과 팀장, 현장소장이 일괄 사표를 내고 전 현장의 작업을 중지했다. DL건설을 계열사로 두고 있는 DL이앤씨도 작업을 멈추고 안전점검에 들어갔다. 올해 초 사망 사고가 난 현대엔지니어링은 신규 수주를 잠정 중단한 상태다.

건설업계 전반의 경각심도 상당히 높아진 상태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오랜 시간 매뉴얼과 시스템을 만들고 교육도 수시로 하면서 안전 관리에 최선을 다해왔는데 최근에는 더욱 민감하게 관리하고 있다"며 "경영진 교체는 물론이고 기업의 존속까지 갈 수 있다는 생각에 노심초사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현실적으로 사고를 피하기 어려운데 처벌만 강해지는 것에 대한 우려도 제기된다. 다른 건설사 관계자는 "공사 지연, 이미지 실추 등의 손해를 생각하면 누구보다 사고를 피하고 싶은게 우리고 그런 만큼 안전관리에 상당한 노력과 비용을 투입하고 있고 사실상 할 수 있는 것은 다 했다고 해도 틀리지 않는다"며 "그런데도 사고가 발생하는 것은 불가항력적인 부분과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사고'란 결과에만 너무 집중해 원인을 잘못 진단하고 처벌을 세게 하면 사고가 없어질 것이란 논리로 이어지지 않아야 한다는 견해다.

또 다른 관계자는 "고령화로 떨어진 현장 인력의 돌발상황 대응 능력, 외국인 의존도 확대로 인한 의사소통 장애와 안전 관리에 대한 인식차, 일부 하청 근로자의 안일한 안전 의식 등이 사고가 반복되는 주요 배경"이라며 "이런 부분에 대한 해결책 없이 '살인 기업'으로 낙인 찍는다면 젊고 유능한 인재 유입을 가로막고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