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실종자가 살아있기를 바랐지만, 결국 돌아오지 못했네요."
20일 오전, 경남 산청군 산청읍 부리마을. 진흙과 부러진 나무더미 속에서 만난 어르신의 목소리는 처참한 현실을 말없이 전했다. 하루 전 쏟아진 시간당 100㎜에 육박하는 폭우는 산을 허물고 집을 덮쳤다. 주택 2채는 토사에 완전히 휩쓸렸고, 그 안에 있던 70대 노부부와 20대 여성 등 세 사람은 끝내 주검으로 돌아왔다.
마을의 형태조차 사라졌다. 산 중턱에 있던 마을길은 개울로 변했고, 어디가 논인지 비닐하우스였는지조차 구분이 되지 않았다. 도로는 붕괴됐고, 전신주는 쓰러졌다. "여기, 원래 주택이 있던 자리예요. 그런데 그냥 사라졌습니다." 한 주민은 그렇게 말했다.
부리마을뿐 아니다. 인근 산청과 합천 일대 11개 마을이 사실상 고립 상태에 놓였다.
주택 붕괴와 함께 전기·통신이 끊겼고, 도로가 토사에 막혀 복구조차 어렵다. 한국전력 경남본부는 "장비와 인력을 대기 중이나, 도로 유실과 침수로 현장 접근이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19일 이후 지금까지, 이들 지역엔 전기 공급이 끊긴 채 암흑 속이 계속되고 있다.

하천은 넘쳐흘렀고, 굴삭기는 진입로에서 멈춰섰다. 일부 마을은 전화와 인터넷도 두절돼 구조 요청조차 쉽지 않았다. 산간 마을의 주민들은 응급 상황에도 외부와의 연락이 끊긴 채 자구책에 의존하고 있다.
20일 오전 기준, 산청군의 집중호우 피해는 사망 8명·실종 6명, 도로·하천 등 공공시설 피해는 30여 건에 이른다.
그러나 피해의 양상은 단순 자연재해를 넘어선다.
'집이 50m 넘게 밀려가는' 산사태, '장비는 있으나 접근 불가'한 정전 복구 지연 등은 기후위기에 맞선 대응 체계의 부실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전문가들은 "도심보다 취약한 산간 마을의 재난 대비체계는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라며, △소형 비상 발전기 사전 배치 △위성통신 기반 보조망 확보 △대체 진입로 확보 등 현장 중심의 '실질적 대응력 강화'가 절실하다고 지적한다.
이날 부리마을의 구조 현장에 투입된 굴삭기는 실종자가 모두 수습되자 멈춰섰다.바위와 샌드위치 패널 잔해만이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산청에서 만난 80대 주민은 말했다.
"여긴 원래 이렇게 생긴 마을이 아니었어요. 이젠 어디가 어딘지도 모르겠네요. 전기도, 길도, 다 끊겼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