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 건설사의 회사채 발행 성적표가 극명하게 갈리고 있다. 높은 금리보다 기업의 잠재 위험과 재무 구조가 이런 결과를 만들어 내는 것으로 해석된다.
20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시공능력평가 상위 10개 건설사 가운데 올해 공모 회사채 수요예측에 나선 곳은 현대건설, 포스코이앤씨, SK에코플랜트, HDC현대산업개발, 롯데건설 등 총 5곳이다.
SK에코플랜트는 16일 진행한 공모 회사채 수요예측에서 모집액(1300억 원)의 6배가 넘는 8330억 원의 주문을 확보하며 흥행에 성공했다. 1년물, 1.5년물, 2년물로 각각 나눠 진행된 수요예측에서 각각 1660억 원, 2850억 원, 4320억 원의 매수 주문이 몰렸고 대부분 물량 희망금리 밴드 하단 수준에서 모집이 완료됐다. 민평금리 대비 마이너스(-) 금리로 발행되는 이른바 ‘언더 발행’에 성공한 것이다.
SK에코플랜트의 공식 신용등급은 A-로 중상위권 수준에 불과하지만 프로젝트파이낸싱(PF) 의존도가 낮고 친환경 및 리모델링·환경플랜트 중심으로 사업 포트폴리오를 다변화한 점이 투자자들의 신뢰를 끌어낸 배경으로 해석된다. 최근 유상증자와 구조조정 등을 통해 재무구조를 꾸준히 개선해 온 점도 긍정적으로 평가됐다.
우량 건설사의 회사채는 연초부터 잇따라 흥행에 성공했다. 현대건설은 2월 수요예측에서 1500억 원 모집에 1조4900억 원의 자금을 끌어모았고 포스코이앤씨는 1000억 원 모집에 2830억 원, HDC현대산업개발은 1200억 원 모집에 2320억 원의 주문을 확보하며 증액 발행에 나섰다. 이들 모두 신용등급이 A+ 이상이거나 실적과 신용 안정성이 유지되고 있다.
반면, 롯데건설은 A급 신용등급을 보유했음에도 투자자들에게 외면당했다. 지난달 1100억 원 규모의 공모 회사채 발행을 위한 수요예측에서 단 한 건의 매수 주문도 접수되지 않으며 ‘전량 미매각’이라는 결과를 받아들었다. 1년물과 1.5년물에 각각 5.4~5.9% 수준의 고금리를 제시했음에도 불구하고 투자자들은 등을 돌렸다. 최근 BBB+ 등급 채권이 3%대 후반 수준에서 발행된 점을 고려하면 금리 메리트조차 시장 신뢰를 회복하기엔 역부족이었다는 평가다.
롯데건설은 2023년부터 신용등급이 A+에서 A로 하향 조정된 데다 PF 우발채무 부담이 지속되며 실질적인 신용도에 대한 시장 평가가 빠르게 악화됐다.
이처럼 회사채 수요예측 결과가 극명하게 갈린 배경에는 ‘표면적 신용등급’과 ‘시장 체감 신뢰’ 사이의 괴리 확대가 결정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전통적으로 기관투자가들은 신용등급을 기준으로 채권을 매입해왔지만 최근에는 등급 그 자체보다 등급의 방향성과 기업의 내재 리스크, 재무 구조의 질적 요소에 더욱 주목하는 흐름이 강해지고 있다.
특히 건설사에 대해서는 PF 부실 우려가 현실화됐던 지난 2년의 경험이 투자자 판단 기준을 근본적으로 바꿨다는 평가다. 단순히 PF 비중이 높다거나 차입금 규모가 크다는 이유만으로 외면당하지는 않지만 해당 리스크를 통제할 수 있는 유동성 확보력, 분양 리스크 관리능력, 자산 매각 가능성 등까지 종합적으로 따져 ‘실질 리스크 통제 능력’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이제는 숫자상의 등급보다 그 등급이 유지될 수 있는가에 대한 신뢰가 더 중요해졌다”며 “PF 비중 자체보다도 그것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는 구조를 갖췄는지, 향후 부채 만기와 분양 일정, 자산 매각 가능성 등을 꼼꼼히 들여다보는 흐름”이라고 설명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