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기업, '단속→예측' 산업안전 DNA 바꾼다 [산재 공화국, 시스템의 부재 中-③]

입력 2026-01-20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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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사는 (2026-01-19 17:04)에 Channel5를 통해 소개 되었습니다.

고용부 '근로감독 행정 혁신 방안' 발표
근로감독 물량 3배↑⋯지자체 권한 위임

안전의 언어가 더 이상 현장에서 통하지 않는다. 대통령은 매일 산업재해 발생 여부를 묻지만 사고는 멈추지 않고 있다. 수많은 대책과 제도 마련에도 불구, ‘죽음의 곡선’이 좀처럼 꺾이지 않는 것이다. 한국의 산재 사망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평균의 세 배, 영국의 열세 배에 달한다. 사고는 줄지 않고 이동했다. 대기업에서 빠져나간 위험은 하청과 재하청, 영세사업장, 통계에 잡히지 않는 비정형 노동으로 옮겨갔다. 정부의 공식 지표가 말하지 않는 ‘숫자 밖의 죽음들’이 늘고 있다. 문제는 시스템이다. 위험은 사전에 관리되지 않고 사고는 발생한 뒤에야 기록된다. 원인은 반복되지만 추적되지 않고 책임은 분산된다. 산재가 많은 나라가 아니라 산재를 끝까지 세지 못하는 나라에 가깝다. 본지는 대통령의 선언 이후에도 산업현장이 왜 달라지지 않았는지, 왜 국가의 안전 관리 체계가 작동하지 않는지를 집중 점검한다.

▲서울 시내 일대 아파트 공사 현장. (사진=본사DB)
▲서울 시내 일대 아파트 공사 현장. (사진=본사DB)

산업현장의 안전 관리 패러다임이 ‘사후 처벌’에서 ‘선제적 예방’으로 전격 전환되고 있다. 과거 사고 발생 후 책임자를 문책하던 규제 중심의 행정이 방대한 데이터를 활용한 인공지능(AI) 예측 시스템으로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기업들에게 안전은 단순한 비용 지출을 넘어, 경영권 보호와 수주 경쟁력을 결정짓는 핵심 투자 지표로서 조직의 DNA를 근본적으로 재편하고 있다.

고용부는 최근 전국 감독관 2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현장 감독관과의 대화’를 열고 ‘근로감독 행정 혁신 방안’을 공식 발표했다. 골자는 스마트 행정으로 규제 사각지대를 없앤다는 점이다. 그동안 고용노동부와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의 행정력은 물리적 한계에 부딪혀 왔다. 전국 수백만 개 사업장을 소수의 근로감독관이 일일이 점검하는 방식으로는 ‘깜깜이 현장’의 사고를 막기 역부족이었기 때문이다.

이에 정부는 근로감독 물량을 현재보다 3배 가까이 늘리고, 그간 ‘감독 사각지대’로 여겨졌던 지역 영세 사업장 관리를 위해 지방자치단체에 근로감독 권한을 전격 위임하기로 했다. 고용부는 현재 연간 5만4000 개소(전체 사업장의 2.6%) 수준인 근로감독 물량을 2027년까지 14만 개소(7%)로 대폭 늘릴 계획이다. 7%는 OECD 평균 수준이라는 설명이다. 또 인공지능(AI)를 활용해 법 위반 가능성이 높은 사업장을 정밀 타격하고 고의적 위반 시 시정 기회 없이 즉시 처벌한다.

핵심은 예측이다. 고용부는 최근 10년 간 발생한 산재 통계와 기상 정보, 개별 사업장의 노후도, 공정률 등을 결합한 ‘위험지수’ 모델을 고도화하고 있다. 데이터에 기반해 선제적 기획감독을 강화하고 사고 가능성이 높은 사업장을 사전에 선별해 집중 점검하는 ‘타겟팅 감독’을 실시한다. 재해조사 방식 역시 단순 문답에서 벗어나 3D 스캔과 디지털 트윈을 활용한 과학적 분석 기법을 도입해 사고 원인을 정밀하게 규명하고 유사 사고 재발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는 방향으로 개편하는 모습이다.

기업들의 대응은 더욱 기민하다. 기업 경영의 핵심 축으로 ‘안전’이 부상한 모습이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안전은 인사·재무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경영의 핵심 지표가 됐다. 시공능력평가 상위권 건설사와 주요 제조 기업들은 이미 최고안전책임자(CSO) 직책을 신설하고 이사회 직속의 ‘안전경영위원회’를 설치해 운영 중이다.

단순히 조직도에 이름만 올린 것이 아니다. 최근 대기업들은 협력사 선정 시 안전 보건 역량 평가 비중을 대폭 상향했다. 안전 관리 수준이 미달인 협력사는 입찰 참여 자체가 불가능한 구조다. 한 대기업 안전보건책임자는 “과거엔 안전이 홍보용 ESG의 일부였다는 측면을 무시할 수 없지만 지금은 IR이나 대규모 수주 시 발주처가 가장 먼저 요구하는 생존 요건이 됐다”며 “안전 관리가 부실한 기업은 자본시장에서 외면받는 시대가 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부와 기업의 이러한 변화가 실제 산재 사망 사고 감소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현장 작동성’이 관건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서류상의 안전이 아닌 실제 현장 노동자들이 위험을 감지하고 작업을 중지할 수 있는 실질적인 권한이 보장돼야 한다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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