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형철 감독의 신작 ‘하이파이브’는 장기 이식 수술 후 본의 아니게 초능력을 얻은 다섯 명의 평범한 사람들이 주인공인 영화다. 이들의 능력은 타인의 생명을 앗아가거나 자연의 법칙을 함부로 조작하는 등 세상을 파괴하는 해악적인 힘이 아니다. 빨리 달리기, 뛰어난 폐활량, 부상 치료, 해킹 등 묘하게 실용적이면서도 생활 속 필요를 채워주는 능력이다.
‘하이파이브’의 포인트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에게 특별한 능력을 부여했다는 데 있다. 감독은 초능력을 지닌 범인(凡人)들의 이야기를 캐릭터 간 호흡과 유머러스한 대사의 맛으로 풀어낸다. 배우들의 코믹한 연기도 인상적이다. 초능력 소재의 영화가 으레 그러하듯 과장된 장면들도 일부 있지만, 극의 흐름을 방해하는 수준은 아니다. 영화는 무엇보다 인물들이 만들어내는 소소한 충돌과 농담을 이야기의 중심에 놓는다.
‘하이파이브’가 흥미로운 점은 그동안 한국형 코미디와 히어로물이 축적해 온 장르적 성취를 적절히 혼합했다는 데 있다. 활극적인 감각은 ‘전우치’(2009)의 톤을 계승하고, 다채로운 캐릭터들이 한데 모여 서로 엇박자를 내면서도 점차 호흡을 맞춰가는 전개는 ‘도둑들’(2012)을 떠올리게 한다. 괴력을 갖게 된 소녀의 이미지는 ‘마녀’(2018)의 세계관과 맞닿아 있으며, 어수룩하지만 환상적인 팀워크로 사건을 해결해 가는 과정은 ‘극한직업’(2019)의 유쾌한 수사극 공식을 빼닮았다.

영화는 시종일관 잔재미와 헛웃음을 통해 이야기를 가볍게 풀어내면서도 사회적 감수성을 잃지 않는다. 가령 산업 재해를 당한 노동자를 구출하는 에피소드처럼 초능력을 정의로운 시민 의식과 연결해 현실의 부조리를 슬쩍 비춘다. 이 과정에서도 특유의 유머를 지속하는데 그 유머가 문제의식을 가볍게 소비하지 않도록 균형을 지킨다. 가벼움과 진지함 사이를 아슬하게 오가며 이야기를 풀어내는 감각이 이 영화의 장기다. 철저한 오락물을 지향하면서도 현실을 외면하지 않는 태도를 보여주는 것이다.
산업 재해를 비롯해 한국 사회가 직면한 다양한 문제의식을 과도한 심각성으로 서사화하기보다는 코미디의 틀 안에서 안정감 있게 풀어내는 장르적 정공법을 택한다. 특별한 설명이나 복잡한 세계관의 구축 없이도 관객들은 시민 영웅들의 행동에 장면마다 웃음을 터뜨리고, 피식거리며 자연스럽게 극의 흐름을 따라간다.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코미디라는 장르가 관객에게 제공하는 가장 본질적인 즐거움일 것이다.
앞서 언급했듯, 다섯 명의 인물들은 거창한 사명감과는 거리가 먼 평범한 사람들이다. 뜻하지 않게 얻은 초능력을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 몰라 좌충우돌한다. 일반적인 히어로물이 내세우는 강인한 리더십이나 카리스마형 주인공과는 거리가 멀다. 그렇기 때문에 ‘하이파이브’는 전형적인 영웅주의 서사를 슬기롭게 피해간다. 이들은 자신의 선택으로 영웅이 된 것도 아니고, 다섯 명 중 확고한 지도자적 인물이 팀을 이끄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서툴며 때로는 우왕좌왕하지만, 공동의 문제 앞에서 조금씩 책임을 나누고 서로를 보완해 간다. 초능력을 사회 정의를 위한 책임감으로 사용하는 이들의 여정이 영화의 정서적 축이자 특별함으로 자리 잡는다.
이재인, 안재홍, 라미란, 김희원 유아인 등이 출연한 ‘하이파이브’는 지난달 30일 개봉해 현재 120만 관객을 돌파하며 흥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