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부과 취소하되 환급가산금 제외”
국세청, 권익委 절충안조차 수용 못해
대법 “법률 해석은 법원의 고유 권한”
헌재 “재심 기각은 기속력 반한 재판”
양대 사법기구 충돌…불똥은 행정부로
최고 법원 위상을 둘러싼 헌법재판소와 대법원 간 자존심 대결에 잘못 부과된 법인세 900억 원에 대한 처리 해법이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헌재의 위헌 결정을 따르지 않는 대법원 판결이 취소까지 됐지만, 법원이 세금을 돌려달라는 해당 기업 재심 청구에 답하지 않고 심리를 3년 가까이 끌면서 결과에 따라서는 수백억 원대에 이를 지연손해금을 과세관청이 떠안게 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정부가 반환해야 할 환급금이 1000억 원대에 달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26일 법조계에 따르면 최근 헌재는 KSS해운이 국세청을 상대로 제기한 행정부작위 위헌 확인 사건을 전원 재판부에 회부하고 본격 심리에 착수했다.
앞서 헌재는 2022년 7월 21일 재심 청구를 기각한 법원 판결과 법인세 부과 처분을 취소해달라는 △KSS해운 △GS칼텍스 △롯데DF리테일 측 헌법소원 심판에서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대법원의 재심 상고 기각 판결을 전부 취소했다.
세 기업 관련 세금 재판은 취소됐지만, 과오납을 바로잡을 재심은 열리지 않고 세무당국은 사법기구 눈치를 보느라 법인세 부과 처분에 결론 내리는 행정행위를 사실상 방치하자 이들 가운데 KSS해운이 가장 먼저 국세청을 상대로 행정부작위 위헌을 구하는 헌법소송을 재차 제기한 것이다.
36년 다람쥐 쳇바퀴 소송
상장 추진하며 감세 혜택
상장 포기하자 세금 문제
GS칼텍스가 돌려받을 법인세는 약 707억 원에 달한다. 이어 롯데DF리테일 104억 원, KSS해운 65억 원 순이다. 총액 876억 원 규모다. 우리나라 헌법재판소 역사 37년과 맞먹는 36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상장 추진 기업을 대상으로 세금 감면 혜택을 부여하던 당시 조세 제도에서 문제는 출발한다.
1990년 GS칼텍스는 옛 조세감면규제법에 따라 자산재평가를 시행하고 주식 상장을 추진했다. 그러나 2003년 상장을 포기하면서 자산재평가를 취소했고, 세무당국은 법인세를 다시 계산해 707억 원의 세금을 부과했다.
GS칼텍스는 이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GS칼텍스 패소 취지로 원심을 깼고 파기환송심 역시 세무당국 손을 들어줬다. 파기환송심 과정에서 GS칼텍스는 옛 조세감면규제법에 대해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했다.
헌재는 “법률이 전부 개정된 경우 기존 법률을 폐지하고 새로운 법률을 제정하는 것과 마찬가지여서 종전 본칙은 물론 부칙 규정도 경과 규정을 두거나 계속 적용한다는 등의 규정을 두지 않는 이상 전부 개정 법률의 시행으로 인해 실효된다”며 한정위헌 결정을 내렸다.
GS칼텍스는 이를 근거로, GS칼텍스 패소 판결한 파기환송심과 서울행정법원의 1심 판결을 취소해달라고 서울고법에 재심을 청구했지만 기각됐다. 이에 GS칼텍스는 재심 청구를 기각한 법원 판결과 법인세 부과 처분을 취소해달라고 헌법소원 심판을 냈다.
KSS해운과 롯데DF리테일 또한 같은 법률 조항이 위헌이라며 낸 헌법소원 사건에서 한정위헌 결정을 받아냈다. 이들은 이를 근거로 법원에 재심을 청구했으나 기각됐다. 이에 두 회사도 재심 결정을 취소해달라고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KSS해운은 2023년 국세청에 직권 취소까지 요청했으나 회신은 없었다. 급기야 국민권익위원회가 나서 “세금 부과는 취소하되 환급가산금은 제외하라”는 절충안을 제시했지만 국세청은 이 같은 권익위 권고마저 수용하지 않았다.

헌법재판소법 개정 논의 개시
헌재 ‘찬성 의견’ 국회제출 vs
대법 ‘사실상 4심제’ 위헌 입장
대법원은 법률 해석 권한이 법원에 있다며, 법원에게 해석 방향을 사실상 강제하는 헌재의 한정위헌 결정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반면 헌재는 대법원 재심 기각은 위헌 결정의 기속력에 반하는 재판으로, 헌재 선고 이후인 2022년 7~8월 청구인들이 법원에 재심 청구를 했으나 현재까지 미선고된 상태로 권리 구제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한다.
법조계에서는 사법부 최고 권위 자리를 두고 헌재와 대법원 간 힘 겨루기가 장기화함으로 인한 책임은 결국 행정부가 지게 된다고 내다보고 있다. 국민 세부담으로 귀결될 것이란 전망이다.
잘못 부과된 세금을 환급할 때는 과세관청은 납부 세액 원금에 지연이자를 붙여 원리금을 돌려준다. 납세액 타당성에 이견이 생겨 다투더라도 일단 세금은 완납한 뒤에 소송을 시작하기 때문이다. 법정 이자율은 연(年) 5%로 지금 같은 금리 인하기에는 이자 부담이 크다고 평가된다. 900억 원에 대한 일 년 이자는 45억 원 수준이다.
국회는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법원 판결을 헌재에서 헌법소원 심판으로 다툴 수 있는 ‘재판 소원’을 허용하는 헌법재판소법 개정안을 논의하고 있다.
헌재는 개정안 취지에 공감한다면서 헌재 결정에 대법원이 따르도록 법률에 명시할 필요가 있고, 사법 체계의 비효율이 발생하지 않도록 재판 소원을 제기할 수 있는 조건을 엄격히 제한하는 등 보완이 필요하다는 적극적인 찬성 의견을 국회에 냈다.
대법원은 헌법이 예정하고 있는 3심제에 반하는 4심제 도입이어서 헌법에 반한다는 반대 입장이다.
박일경 기자 ekpark@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