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대기업들이 6·3 대선에서 집권할 차기 정부의 과제로 ‘규제 개혁’, ‘세제 개편’, ‘노동시장 유연화’를 꼽았다. 기업 대부분( 86%)은 올해 경제 위기 가능성을 염려하면서 투자·고용보다 생존 자체를 고민해야 할 지경이라고 토로했다. 시장과 기업이 입을 모아 ‘반기업 폭주’를 멈추라고 절규하는 형국이다.
본지가 최근 대기업 51곳을 대상으로 실시한 ‘차기 정부에 바라는 기업 과제’ 설문조사에서 10곳 중 9곳은 현재의 경영환경을 ‘위기’로 규정했다. 고질적인 내수 침체에 더해 수출도 부진의 늪에 빠져드는 상황이니 다른 답변을 고를 여지도 없었을 것이다.
가장 시급한 정책 과제로는 ‘수출 지원 및 글로벌 경쟁력 강화’(66%)가 거론됐다. 신산업 육성(58%), 불합리한 규제 개혁(56%), 세제 개편(34%)을 꼽은 답변도 많았다. 특히 기업들이 조심스럽게 답한 세제 문제에선 잦은 제도 변경과 예측 어려움이 경영 불확실성을 키우는 것으로 지목됐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세금 정책이 널뛰듯 바뀌어 누더기 세제가 된 현실을 돌아봐야 할 대목이다.
노동시장 개선 방향에 대해서는 64%가 ‘근로시간 유연화’를 최우선 과제로 짚었다. 최근 반도체 연구개발(R&D) 등 고부가가치 산업에서 주 52시간 제도의 유연 적용 필요성이 강력히 제기된 현실과 맞닿아 있다. 인허가 규제 역시 큰 고충이다. 2019년 초 건설 계획이 발표된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가 올해 2월에야 첫 삽을 뜬 것이 대표적이다. 지방자치단체가 인허가를 질질 끌고, 토지 보상 과정에서도 진통이 컸다. 막판엔 전력 공급 문제까지 불거지며 착공이 늦어졌다. 이래서야 어찌 신사업을 펼치겠나. 글로벌 경쟁은 언감생심이다.
대선 주자들은 경제 살리기를 약속하고 있다. 경제 회복 및 성장 담론이 대선 가도에 등장한 것은 그나마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구체성이 부족하니 탈이다. 말로는 다 ‘친기업’이고 ‘성장’이다. 하지만 규제 개혁·투자세액공제·상법 개정·상속세 등 기업들의 절박한 요구는 귓등으로 흘리기 일쑤다. 천문학적 규모의 자금을 투입해 기업들이 인공지능(AI) 등 첨단 기술 경쟁에 나설 수 있도록 하겠다는 요란한 구호도 없지 않지만, 이 역시 미덥지 못하다.
공허한 약속으로 대선 시간을 낭비해도 괜찮은 상황이 아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은 올해 세계 경제 성장률을 3.0%에서 2.7%로 0.3%포인트 하향 조정했다. 세계 교역이 급격히 위축된 가운데, 금융위기와 부채위기 등 리스크가 겹치며 글로벌 성장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진단이다. 미국과 중국이 ‘관세 90일 유예’에 합의했지만, 불확실성이 여전해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다는 문제도 있다.
설상가상으로 ‘R(Recession·경기침체)’의 공포마저 엄습하고 있다. 관세 쇼크로 미국은 물론 세계 경제가 파국에 빠진다는 시나리오다. 한국 경제도 심각하다. 새로운 성장 엔진을 찾기는 어렵고 구조조정 과제는 산더미다. 6월 대선을 향해 뛰는 대선 주자들이 각성해야 한다. 붉은 펜으로 밑줄을 치면서 본지 설문조사 결과를 연구할 필요가 있다. 가야 할 길이 보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