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5년 누적 저가 4123억 원…비싼 가격에 소비자 외면

김홍국 하림그룹 회장이 종합식품기업 도약을 선언하며 2021년 야심차게 선보인 프리미엄 가정간편식 브랜드 ‘더미식’이 그룹 실적 부진의 주범인 것으로 분석됐다. 더미식 사업을 주관하는 식품계열사 하림산업은 매년 영업손실을 눈덩이처럼 키우고 있어, 지주사(하림지주)와 그룹 계열사의 자금 지원에도 ‘밑 빠진 독’ 신세로 전락하는 모양새다.
7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하림산업의 지난해 영업손실은 1276억 원으로 전년보다 적자 폭이 16.5% 늘었다. 최근 5년간 영업손실이 계속 늘어, 지난해까지 누적 적자가 4123억 원까지 불어났다.
앞서 김홍국 회장은 더미식을 연 매출 1조5000억 원 규모의 '메가 브랜드' 성장 목표를 밝혔지만, 작년 매출은 802억 원에 그쳤다. 같은 기간 제품 판매를 위해 들어간 비용을 뜻하는 '매출원가'는 무려 1328억 원으로, 전년보다 14.7% 늘었다. 매출원가가 매출보다 약 500억 원 높은 탓에, 하림산업은 더미식을 많이 팔수록 손실이 늘어나는 늪에 빠졌다. 원가보다 낮은 가격에 판매하는 데다, 판매를 위한 광고·유통 비용도 높기 때문이다. 하림산업은 더미식 광고 모델로 넷플릭스 오리지널 ‘오징어게임’에 출연, 글로벌 스타 반열에 오른 배우 이정재를 발탁하기도 했다. 하림산업의 작년 광고판촉비는 267억 원으로 전체 매출액의 33%를 차지한다.
하림산업은 2021년 '더미식 장인라면'을 출시 이후 2022년 더미식 즉석밥, 유니자장면에 이어 2023년 만두 9종 및 비빔면 등을 잇달아 선보이며 제품군을 확장하고 있다. 더미식은 김 회장의 장녀인 김주영 하림지주 전략기획2팀 상무가 아버지를 도와 직접 제품 기획부터 출시까지 진두지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홍국·김주영 부녀가 역점을 두고 있는 더미식이 첫 출시 이후 4년 가까이 소비자 외면을 받는 것은 무엇보다 타사 제품보다 비싼 가격 때문이다. 더미식은 가정간편식 후발주자인 탓에 기존 시장을 구축한 경쟁사와 차별화를 위해 '프리미엄' 전략을 취했지만, 소비자의 지갑을 열기에는 부담스런 가격에 발목을 잡히고 있다.
대표적으로 2021년 출시한 장인라면의 편의점 판매가는 1봉지당 2200원으로, 농심의 신라면(1000원)에 비해 두 배 이상 비싸다. 즉석밥 제품군도 '더미식백미밥'(210g)이 2300원으로, CJ제일제당의 '햇반'(210g)보다 200원 비싸다. 더미식은 프리미엄 전략이 사실상 실패한 터라, 지난해 대규모 할인 판매에 돌입하면서 매출조정(에누리)에 273억 원을 반영했다. 당초 정가보다 싸게 팔면서 에누리한 비용 만큼 손해를 본 것이다.
식품업계 한 관계자는 “더미식이 프리미엄 전략을 통해 견고한 기존 시장의 틈새시장을 노렸지만, 결국 소비자들의 가격 저항에 부딪혔다”며 “실제 유통채널에선 할인 판매가 이어지고 있어 프리미엄 이미지도 약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게속된 적자로 인해 하림산업은 그룹 계열사와 지주사로부터 자금을 수혈하고 있다. 하림산업은 작년 10월 특수관계인 NS홈쇼핑으로부터 180억 원을 빌린 데 이어 올해 1월 100억 원을 추가로 대여 받았다. 또한 4월엔 하림지주도 하림산업에 시설자금 조달을 목적으로 500억 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결정했다. 전액 하림지주가 출자하면서, 총 출자액은 1800억 원으로 늘어났다.
일련의 상황에 대해 본지는 하림산업 측에 복안 마련 등을 여러 차례 문의했으나, 이날 오후까지 일체의 답변을 받지 못했다.
한편 하림산업은 작년 6월 연구·개발(R&D)부서를 제외한 홍보, 마케팅, 영업부서 임직원들을 경기 성남시 분당구 판교로(삼평동) 사옥에서 김 회장의 집무실이 있는 하림지주 사옥, 서울 강남구 논현동 하림타워로 옮겨 근무하도록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