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달 18일 SK텔레콤(SKT) 서버에서 9.7GB 용량의 파일 이동이 감지됐다. 문서로 환산하면 약 270만 쪽에 달하는 수준이다. SKT는 사고 이틀이 지난 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인터넷진흥원에 침해 사고를 신고했다.
이후 22일 “악성코드로 인해 고객의 유심 관련 일부 정보가 유출된 것으로 의심되는 정황을 발견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7일 민관합동조사단에 따르면 가입자 전화번호, 가입자식별키(IMSI) 등 유심 복제에 활용될 수 있는 정보 4종과 SK텔레콤 관리용 정보 21종이 유출됐으며, 해킹에 사용된 악성코드는 'BPF도어(BPFDoor)' 계열로 확인됐다.
SKT는 곧바로 유심보호서비스 가입과 유심 교체를 권고했다. 하지만 유심보호서비스는 해외 로밍 이용자에게 적용할 수 없었고, 유심 교체 서비스도 확보된 물량이 100만 개에 불과해 전체 가입자를 수용하기에 턱없이 부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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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숙정 변호사는 “이번 사태의 가장 큰 문제는 사고 발생 이후 대응의 부실함”이라고 지적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이날 직접 나서서 사과하며 고개를 숙였지만, 피해 고객들을 중심으로 집단소송 움직임이 가시화하고 있다.
다만 현행 법체계에서 개인정보 침해 배상은 미미한 수준에 그친다. 법원이 개인정보 침해 등 소송에서 인정하는 손해배상액은 대체로 10만~50만 원에 불과하다.
앞서 KB국민카드‧NH농협카드‧롯데카드가 2014년 고객정보 1억400만 건을 유출한 혐의로 기소돼 법원에서 벌금형(1000만~1500만 원)을 선고받은 바 있다. 이어진 민사소송에서 법원은 “1인당 10만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소송 비용만 수십만 원이 나가는데 배상금이 10만 원 수준이라면, 개인 소송은 비합리적이다. 이에 개인정보 유출 사태가 반복될 때마다 피해자는 실질적인 구제를 받지 못하는 악순환으로 연결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 변호사는 “집단소송은 소비자가 개별적으로 대응할 때보다 효율성과 효과성 측면에서 우위에 있다”며 “비용을 분담하고, 진행 과정의 부담도 줄일 수 있으며, 무엇보다 기업에 대한 협상력이 향상된다”고 강조했다.
실제 미국의 3대 통신사 중 하나인 T모바일은 2021년 해킹 사고로 고객들에게 3억5000만 달러(약 4590억 원)를 배상했으며, 1인당 최대 2만5000달러(약 3200만 원)를 지급하기도 했다.
그러나 한국의 제도적 환경은 미국과 다르다. 징벌적 손해배상제도가 제한적인 탓에 집단소송을 통해서도 얻을 수 있는 배상액은 한계가 있다. 또 소송 참여자 모집, 진행 과정에서의 비용과 시간 부담, 입증 책임 문제 등 여러 장벽이 존재한다.
결국 이번 사태는 개인정보 보호 체계의 근본적인 재검토가 필요함을 시사한다.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위자료 상향 조정 △과징금 수준의 현실화 △2차 피해에 대한 입증 책임의 전환 △경영진 책임 강화 등 제도적 개선이 시급하다.
김 변호사는 “개인정보 해킹, 유출 사고에서 집단소송은 단순한 금전적 배상 수단을 넘어 기업의 안일한 개인정보 관리에 경각심을 일깨우고 강력한 보안 체계 구축을 촉구하는 사회적 견제 장치로 기능해야 한다”고 말했다.
[도움]
김숙정 변호사는 법무법인 동인 개인정보보호/통합보안팀, 수사대응팀, 영장포렌식팀에서 근무하고 있으며, 검찰청 검사,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검사 등으로 활동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