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터리 양극재, 5분의 1가격에
태양광 패널, 철강 등 수입 급증
제조기업 28% "매출 및 수주 타격"
중국산 저가 제품이 전방위로 유입되면서 국내 산업 전반에 ‘가격 붕괴’ 경고음이 울리고 있다. 태양광 패널부터 가전, 섬유, 철강, 석유화학에 이르기까지 이미 중국산 공습에 가격경쟁력을 잃은 국내 제조업들은 미·중 무역갈등 격화로 더욱 심각한 상황에 처할 것이란 위기감에 휩싸였다. 원가 이하로 밀어붙이는 중국발 공급 과잉에 일부 업종은 내수 시장마저 잠식당할 가능성이 커지면서 미·중 관세 전쟁이 사실상 ‘한국 제조업 타격전’으로 번질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20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중국산 건축용 도금·컬러강판 수입량은 2022년 76만t(톤)에서 지난해 102만t으로 34.2% 증가했다. 같은 기간 중국산 도금강판 가격은 t당 952달러에서 730달러로 23.3% 하락했다. 동국제강 관계자는 “중국산 저가 공세 탓에 올해 건축용 도금강판의 내수 기준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84%, 컬러강판은 24% 급감했다”며 “실질적 피해가 눈앞의 현실이 됐다”고 토로했다.
열연강판도 예외는 아니다. 철강협회에 따르면 지난달 중국산 열연강판 수입량은 13만3781t으로 전월보다 18%, 1월 대비 78% 증가했다. 국내산 제품 가격이 t당 80만 원 초반인 반면 중국산은 70만 원대 후반으로 더 저렴하다. 국내 철강업계는 열연강판에 대한 반덤핑 조사를 정부에 요청한 상태다.
태양광과 2차전지 소재 역시 마찬가지다. 태양광의 핵심 원료인 폴리실리콘은 중국산 가격이 ㎏당 7~8달러 수준이다. 국산(20달러 안팎)의 3분의 1에 불과하다. 지난달 중국산 폴리실리콘 수입량은 110t으로, 6개월 전보다 73% 급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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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터리 핵심 소재인 양극재도 가격 경쟁에서 밀린다. 중국산 LFP(리튬인산철) 양극재는 t당 5달러에 거래된다. 국산 삼원계 양극재(25달러)의 5분의 1수준에 그친다. 중국산 양극재 수입량은 지난해 9월 1098t에서 올해 1월 3000t, 3월에는 4788.9t까지 뛰었다.
박재범 포스코경영연구원 수석연구원은 “중국산 소재는 보조금을 등에 업은 초저가 공세로 기업의 자구 노력만으로는 원가 차이를 극복하기 어렵다”고 경고했다.
가전 시장에서도 중국산 저가 공세가 거세다. 샤오미가 최근 국내 출시한 고사양 스마트폰 ‘포코 X6프로’는 39만9000원이다. 삼성전자 ‘갤럭시S24 팬에디션’(94만6000원)과 유사한 스펙이지만 가격은 절반에도 못 미친다. TCL은 56인치 QLED TV 가격을 69만 원에서 46만 원대로 인하했고 10만 원대 소형 냉장고도 온라인몰에서 인기다.
전문가들은 가격 공세의 배경으로 중국의 대규모 산업 보조금을 지목한다. 중국 중앙은행에 따르면 지난 4년간 국영은행이 기업에 공급한 대출만 1조9000억 달러(약 2700조 원)에 달한다. 구기보 숭실대 글로벌통상학과 교수는 “중국은 전략 품목에서 글로벌 점유율을 높일 때까지 보조금을 계속 지급할 것”이라며 “중국산 제품의 글로벌 시장 잠식은 당분간 더욱 가속화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중국의 저가 공세는 이미 우리 기업의 실적에 영향을 주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지난해 8월 전국 제조기업 2228개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중국산 저가 공세가 국내 제조업에 미치는 영향’결과에 따르면 응답기업의 27.6%가 중국제품의 저가 수출로 인해 “실제 매출·수주 등에 영향이 있다”고 답했다. 42.1%는 “아직 피해는 없지만 앞으로 타격이 우려된다”고 응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