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 침투한 팬덤…'당무'에 '입법'까지 입김

입력 2024-08-08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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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과 연예인 등 특정인을 강성 지지하는 팬덤 문화가 정치권을 파고들고 있다.

이들이 특정 정치인에 호의적이거나 적대적인 여론을 형성해 정당의 정무적 판단부터 국회의원의 입법권에 이르기까지 적지 않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단 지적이 나온다.

위드후니 출몰…정치권이 마주한 팬덤

최근 정치권은 ‘위드후니’(with후니)의 등장을 주목하고 있다. 위드후니는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의 열혈 지지층으로, 보수 진영의 새로운 신드롬으로 부상하고 있다.

8일 오전 한 대표가 ‘취약계층 전기료 1만5000원 추가 지원책’을 발표한 직후, 위드후니 회원들의 움직임은 분주해졌다. 이들은 한 대표의 전기료 감면 기사가 하나둘 보도되기 시작하자 서로 링크를 공유하고 ‘긍정 댓글’을 달아달라고 화력 요청을 했다.

‘한동훈 기사모음’이라는 카페 내 게시판에 기사 링크를 공유한 뒤 “특정 기사 댓글란이 지저분하다”, “선플(긍정적 댓글), 추천을 눌러달라”, “여기(이 기사)도 도와주세요”라는 글을 올리는 식이다. 일부 회원들은 기사 링크를 타고 들어가 긍정 댓글을 남긴 뒤, 게시판에 “댓완(댓글 작성 완료)”이라고 작업 완료를 알렸다.

이날 기준 위드후니 회원 수는 약 9만3000명이다. 위드후니는 2020년 7월 한 대표가 검사장으로 재직하던 시절 처음 개설됐다. 문재인 전 대통령 정권 초기 4번의 좌천을 겪으며 한 검사장이 암흑기를 지나던 때였다. 22대 총선이 치러진 올해 4월을 기점으로 회원 수는 약 4달 만에 4배로 폭증했다.

이들은 ‘당원가입 인증운동’에도 나서고 있다. 한 대표가 과거 당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았던 지난해 12월부터 이달 8일까지 카페에는 3500개가 넘는 당원 가입 인증글이 올라왔다.

◇ 개딸화?…“제지해야” vs “문제 없어”

‘한동훈 팬덤’의 세 과시와 영향력이 커지면서 정치권에선 이들을 야권 내 강성 지지층으로 꼽히는 ‘개딸’(개혁의 딸)과 묶어 언급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개딸은 네이버 카페에 ‘재명이네 마을’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의 팬덤으로, 가입자만 20만명이다. 이들은 최근 ‘이재명 사당화’를 비판한 김두관 당 대표 후보에게 집중포화를 가하는 등 이 전 대표의 홍위병을 자처하고 있단 평가가 나오고 있다.

여권에서도 최근 당 정책위의장이 교체되는 과정에 정점식 전 의장에 대한 ‘댓글 테러 사건’이 발생하면서 ‘극성지지’에 대한 우려가 증폭됐다. 특정 정치인에 대해 좌표를 찍고 댓글 공격에 나서는 모습이 여야 팬덤 모두에게서 유사한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범친윤’으로 분류되는 김민전 최고위원은 지난달 31일 한 언론매체 유튜브에 나와 “‘(한 대표의) 제3자 특검법 도입 여부 결정과 같은 원내 전략 수립은 의원총회에서 결정하는 것’이라고 말했다가 ‘문자 테러’를 받았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한 대표는 “팬덤은 이용하지 않을 것”이라며 “개딸같은 행태는 절대로 하면 안 된다”고 진화에 나섰지만 여권 내에서도 반응은 극과 극이다.

장예찬 전 의원은 지난달 27일 자신의 SNS에 “우리가 그토록 비판해온 ‘개딸’과 ‘한딸’(한동훈 팬덤을 개딸에 빗댄 표현)의 차이점이 무엇이냐”며 “그들이 보수에서 제2의 개딸 노릇을 한다면 한 대표가 직접 나서서 자제시켜야 한다”고 지적했다.

반면 이들의 행동을 문제삼는 것은 무리라는 반론도 있다. 신지호 당 전략기획 사무부총장은 “(한동훈 팬덤이) 굉장히 성숙한 시민 의식을 가지고 있어 깜짝 놀랐다”며 “‘개딸’들처럼 인격 모독적인 문자 폭탄을 날리는 것은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이날 본지에 “정치라는 건 이성적 프로세스다. (그런데) 정치가 감성화되면 상대방을 적으로 생각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개인적 친밀감에 근거한 정서가 지구당 사무실을 찾아가는 등 정치적 목적이 있는 행위로 치환되기 때문에 경계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 팬덤 문화, 입법권에도 입김

22대 국회 개원 후 박성훈 국민의힘 의원과 신영대 민주당 의원은 이른바 ‘김호중 방지법’(도로교통법 개정안)을 발의했다가 집단 린치의 표적이 되었다.

신 의원과 박 의원은 각각 지난 6월과 7월 이른바 ‘술타기’ 수법을 차단하기 위해 음주측정을 피해 도주하는 행위를 처벌할 수 있도록 한 도로교통법 개정안을 내놨다. 두 의원 모두 법안에 ‘김호중 방지법’이란 별칭을 붙였다. 지난 5월, 술타기로 처벌을 피하려다 논란이 된 가수 김호중 사건의 재발을 막겠다는 취지에서다.

법안 발의 직후 박 의원의 네이버 공식 블로그에는 “김호중 씨는 선행도 많이 하고 팬과 함께 수십억 원을 기부했다”, “앞날이 창창한 젊은 청년이 순간의 실수로 잘못했지만 법안에 실명을 넣는 것은 인격살인”며 법안 철회를 요구하는 댓글이 줄줄이 달렸다.

일부는 “박성훈, 똑똑히 기억하겠다. 다음 선거에서 보자”라고 압박하거나, 그에 대한 탄핵(의원직 제명)을 거론하기도 했다. 이러한 댓글은 보름 만에 1400개를 돌파했다. 신 의원의 블로그 링크를 올리며 “여기에도 건의를 좀 해달라”며 화력 지원을 부탁하는 이들도 더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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