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 너머] 거짓말은 얼룩을 남긴다

입력 2024-08-0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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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김애란의 단편 ‘가리는 손’에서 주요 열쇳말 중 하나는 ‘얼룩’이다. 동남아 유학생과 결혼했다가 이혼한 주인공은 중학생 아들 재이를 홀로 키운다. 어른이자 엄마로서 온갖 편견이 굳어진 사회가 다문화 아이에게 줄 상처를 아등바등 막아내면서.

어느 날 재이 또래 남학생들이 폐지 줍던 노인을 폭행해 숨지게 한 사건이 발생한다. 목격자였던 재이는 쓰러진 노인을 한참 지켜보다 자리를 뜬다. 재이는 경찰 조사에서 “학원 수업을 빼먹었는데 엄마에게 혼날까 봐 신고하지 않았다”고 거짓말한다.

거짓말은 주인공의 가슴에 묘한 얼룩을 남겼다. 이후 둘만의 저녁에서 사건 당시 학생들이 노인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 묻자, 재이는 “틀딱?”이라며 미소 짓다 표정을 감춘다. 순간 CCTV에 나오는 재이가 손으로 황급히 가린 건 비명이 아니라 웃음일지도 모른단 생각에 주인공은 탄식한다.

누구나 거짓말을 한다. 그것이 사소하든 선의든 무언가 숨기고 싶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김애란 작가는 청결에는 청결의 관성이, 얼룩에는 얼룩의 관성이 있다고 표현한다. 재이의 거짓말로 드러나는 얼룩의 실체는 결국 숨길 수 없었을 것이다.

지금도 누군가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 최근 대통령 탄핵청원 입법청문회에서 ‘채상병 순직사건 외압 의혹’과 관련해 국방부 측과 박정훈 대령의 주장은 완전히 엇갈리고 있다. 의혹의 발단이 된 ‘VIP 격노설’을 놓고도 여전히 진실공방만 펼쳐질 뿐이다.

채상병 사건과 닮은 ‘세관 마약수사 외압 의혹’도 마찬가지다. 경찰 지휘부가 사실을 부인하자 폭로자인 백해룡 경정은 “뻔한 거짓말을 한다”며 맞서고 있다. 모두 국회에서 나온 발언인 만큼, 추후 위증 혐의로 또다시 다툴 것으로 보인다.

같은 거짓말이라도 중학생인 재이와 수사외압 의혹 관련자들 입에서 나오는 말의 무게는 차원이 다르다. 손바닥으로 하늘은커녕 입가에 띤 미소도 제대로 가리지 못한다는 걸 본인들은 알고 있지 않을까.

거짓말은 또 다른 거짓말을 낳는다. 때론 거짓말을 하는 사람은 그 거짓을 감추기 위해 그것을 진실인 양 자신마저 속인다. 거짓말은 그렇게 시간이 지날수록 얼룩만 더 쌓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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