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시각] 김홍국 하림 회장, ‘총수 클래스’가 안보인다

입력 2024-01-09 05:00 수정 2024-01-09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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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선 생활경제부장
▲석유선 생활경제부장
“김홍국 회장, 대체 몇 살이죠? 달리기가 엄청 빠릅니다. 결국, 놓쳤습니다.”

지난달 21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 하림그룹 서울사옥 앞. 소위 ‘뻗치기’를 나간 후배 남기자 M의 시무룩한 목소리에 헛웃음이 나왔다. 당시 서울 아침 최저기온은 영하 14도에 달할 정도로 엄동설한이었다. 아침 8시 사옥에 당도한 M은 오전 내내 손을 호호 불며 김 회장을 기다렸지만, 출근길에선 그를 만나지 못했다.

이번엔 점심식사를 하러 나갈 김 회장을 기다렸다. 회장의 차량이 확실한 메르세데스-마이바흐 S클래스 앞에서 M이 버티고 있자, 11시 25분경 김 회장이 드디어 등장했다. 비서실 등을 통해 이미 보고를 받았을 테다. M이 그 기자임을 직감한 김 회장은 흔한 인사조차 건네지 않고, 냅다 사옥 안으로 달리기를 시작했다. M은 1995년생이다. 결국 1957년생 닭띠인 김 회장을 놓쳤고, 앞서 탄식은 이때 나온 것이다.

하림지주 변모 홍보팀장을 비롯해 임직원들이 이내 달려와 M을 강하게 제지했다. 그 과정에 한 건장한 경호원은 “회장에겐 질문 못 해” “절대 못 물어볼 껄”이라며 이죽거리기까지 했다. 그 사이 김홍국 회장의 애마 ‘마이바흐’가 사옥 정문에 도착, 김 회장을 황급히 태우고 홀연히 사라졌다.

막내 기자의 실패를 만회하기 위해, 이튿날 7년 차 여기자 K가 하림사옥을 찾았을 때는 전날보다 상황이 더 나빴다. 아예 비서실과 경비원들이 K를 에워쌌고, 변모 팀장은 “(김 회장은 오늘도) 만날 수 없을 것”이라고 엄포를 놨다. 사옥에 사실상 접근조차 못 하게 된 K는 인근 커피숍에서 몸을 녹이고 점심시간을 노렸지만, 이번에도 마이바흐는 재빨리 김 회장을 태우고 사라졌다.

지난 연말 후배들의 혹독한 ‘취재 실패기’를 복기하는 이유는 다름 아닌 김홍국 회장의 ‘재벌 총수 클래스’가 아직은 미흡해 보여서다. 엄동설한에 아침부터 뻗치기를 하는 기자들에게 설령 원하는 답변을 해주기 어렵더라도, 줄행랑을 칠 이유가 굳이 있었나. 따뜻한 인사 한마디 하기 그리 힘들었나.

문득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떠오른다. 사법 리스크로 인해 서초동 법정을 오갈 때를 제외하고 이 회장은 상무, 부회장 시절 출근길이나 해외출장 시 기자들이 뻗치기를 나오면 최대한 살갑게 질문에 응했다. 기삿거리가 될 한마디 말조차 하기 어려운 때는 “꽤 춥죠? 고생하십니다”라는 인사말이라도 건네고 사라졌다. 이 회장이 그간의 고초를 겪고도 무난히 ‘회장 타이틀’을 단 데는 출입기자와 그동안 돈독히 쌓아온 일종의 ‘뻗치기 여론’이 한몫 하지 않았을까.

반면 김홍국 회장은 본인이 자청한 기자간담회를 제외하곤 2~3개의 극소수 언론사 기자와 직접 ‘전화 인터뷰’를 해 빈축을 사는 경우가 잦다. 작년 연말 본지가 이틀에 걸쳐 뻗치기에 나선 것은 HMM 매각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하림그룹에 대한 각종 의혹과 우려가 난무한 터라, 그의 입으로 직접 설명을 듣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김 회장은 본지 기자의 “한 말씀만 해주세요”란 외침을 철저히 외면했다.

김 회장은 11살 때 외할머니가 준 병아리 10마리를 곱게 닭으로 키워, 그 돈을 종잣돈 삼아 축산업을 시작한 ‘될성부른 떡잎’이었다. 1986년 하림을 세운 그는 육계농장-가공공장-시장유통 판매까지 통합한 ‘삼장 통합경영’을 통해 본격적으로 사업을 본궤도에 올린다. 2001년 하림그룹을 세워 사료(제일사료 인수)를 비롯해 육계(올품), 가축약품(한국썸뱉), 유통업(NS홈쇼핑) 등을 계열사로 편입하고, 양돈(선진)까지 수직계열화를 완성했다.

특히 2015년에는 1조 원을 들여 국내 최대 벌크선사 ‘팬오션’을 인수, 해운업까지 진출하며 단번에 재계 순위(2023년 기준 27위)가 뛰었다. 타고난 금수저가 아닌 1세대 창업주로서 스스로 살아있는 역사가 된 김 회장을 존경해 마지않는다.

하지만 김 회장을 필두로 한 하림그룹의 대(對)언론관이 유독 아쉬운 때다. 시장에서는 하림그룹(자산 17조 원)이 자신보다 덩치가 큰 HMM(자산 25조8000억 원·재계 19위)을 품었다가, 자칫 ‘승자의 저주’에 빠지지 않을까 우려가 크다. 또 HMM의 유보금 10조 원을 하림이 인수 후 함부로 쓰지 않을지, HMM과 팬오션의 합병 또는 인위적 구조조정 여부도 관심사다.

여러 의혹과 우려에 대해 하림은 ‘A4용지 2장’짜리 간략한 입장문만 냈을 뿐이다. 해운업계와 HMM 노조 등은 입장문 발표 이후에도 속 시원한 설명이 없다고 꼬집는다. 해운업계와 식품업계 출입 기자들 역시 답답하기는 마찬가지다. HMM의 인수가 완료되면 하림그룹은 재계 13위로 껑충 뛰어오른다. CJ그룹마저 제치게 된 김 회장이 과연 그 이후에는 기자들과 사옥에서 마주치면 어떤 태도를 보일까 궁금하다. 새해도 됐으니 “달리기나 더 열심히 연습하라”고 후배 기자들을 닦달해야 하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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