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이예람 중사가 느꼈을 배신감

입력 2023-07-20 06:00 수정 2023-07-28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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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경제부 송석주 기자
▲ 사회경제부 송석주 기자

정주리 감독의 ‘다음 소희’는 콜센터 노동자의 현실을 다룬 영화다. 주인공인 소희(김시은)는 춤을 좋아하는 여고생이다. 소희는 춤을 직업으로 삼고 싶지만, 넉넉지 않은 가정형편으로 인해 하루빨리 취직해야 한다. 졸업을 앞두고 한 콜센터에 현장 실습을 나가게 된 소희는 온갖 부당한 대우를 당하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소희의 죽음에 의문스러운 점을 감지한 형사 유진(배두나)은 그녀의 죽음을 추적한다. 참담한 욕설을 내뱉는 고객들. 야근해도 수당을 제대로 지급하지 않는 회사. 취업률을 위해 학생들을 아무 회사에나 보내는 학교. 취업률로 학교를 줄 세워 평가하는 교육청. 소희의 죽음이 사회구조적 문제에 있음을 깨닫게 된 유진은 좌절한다.

2021년 5월, 또 한 명의 여성이 죽었다. 바로 이예람 중사다. 공군 제20전투비행단 소속이었던 이 중사는 선임인 장 모 중사로부터 성추행을 당한 뒤 군검찰 수사 도중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 중사 사망 사건 수사 과정에서 군검사에게 위력을 행사한 혐의로 기소된 전 공군본부 법무실장 전익수 씨는 지난달 29일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피고인의 행동은 수사의 공정성을 현저히 훼손하는 것으로 매우 부적절한 행위”라면서도 “처벌의 필요성만으로 죄형법정주의를 후퇴시킬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전 씨에게 죄를 묻고 싶지만, 그를 처벌할 수 있는 법이 없다는 취지다. 전 씨에게 적용된 면담강요죄 법 규정은 검사가 아닌 증인이나 참고인을 보호하기 위해 제정됐다.

새로운 미래를 위한 청년변호사 모임(새변)은 성명서를 내고 “저연차 군검사에게 위력으로 수사를 방해하는 자를 형사법적으로 처벌할 규정이 없다는 입법의 불비 현실이 매우 심각한 문제”라며 성토했다. 이 중사의 아버지는 선고 이후 “군검사에 대한 면담강요죄를 처벌하는 특별법, 이른바 ‘전익수 방지법’을 만들어 달라”며 눈물을 삼켰다.

감히 짐작건대 이 중사는 모욕감 이전에 배신감을 느꼈을 것이다. 평소 이 중사는 ‘여군’이 아닌 ‘군인’으로서 계속 일하고 싶어 했고, 군인인 자신의 모습을 자랑스러워했다고 한다. 그런 그가 같은 군인에게 성추행당했다. 이 중사는 피해 사실을 상관들에게 알렸지만, 군조직은 이를 은폐하고 왜곡했다. 이는 명백한 배신이다.

좋아하는 춤을 포기하고 뛰어들었던 노동 현장에서 적절한 보상을 받지 못한 소희와 그저 군인으로 계속 일하고 싶었던 이 중사를 우리 사회는 지켜주지 못했다. 아니, 배신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전 씨에 대한 무죄 선고로 군 사법기관 등의 노력에 찬물을 끼얹게 되는 것은 아닌지 “마음이 무겁다”라고 밝혔다. 지금 이 중사의 마음은 어떨까. 우리 사회는 그가 느꼈을 배신감을 어떻게 위로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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