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삶, 배움] 창의교육은 없다

입력 2023-04-14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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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준 한국직업능력연구원 선임연구위원

4차 산업혁명에 대응하기 위한 창의 인재 양성과 창의교육의 중요성은 날로 커지고 있다. 대형 인터넷 도서 홈페이지나 학술 관련 아카이브에서 ‘창의(력) 교육’이라는 단어로 검색을 해보면 몇 개의 교재를 제외하고 아동과 초등학생을 위한 수학, 과학 학습지 소개, 그리고 실체가 불분명한 창의 프로그램 소개가 대부분인 것을 발견하게 된다.

자기 주도형 학습과 프로젝트 수행

학교 현장에서 창의교육 학습법은 대체로 교사주도형 학습보다는 학생 자기 주도형과 프로젝트 수행으로 이루어져 있다. 전자는 교사가 학생에게 사전 배경지식을 전무 아니면 최소한 제공하여 학생 스스로 문제를 고민하여 해결하도록 만드는 방식이다. 후자는 어떠한 문제를 실생활에 적용하는 방안을 찾도록 하는 실천적 행동을 요구한다.

교육 방식에서 배경 지식의 최대한 배제 원칙은 루소의 ‘에밀’의 영향이 커 보인다. 과거의 학문을 가르치는 것을 부정한 루소는 진정한 교육은 절대 서두르지 않으며 교사의 주관적인 관념을 아이에게 전달하지 않는 것으로 규정하였다. 그럴 것이 17세기 초부터 발생한 베이컨의 경험주의와 데카르트의 합리주의는 인간의 역사나 관습보다 관찰, 과학, 합리적 의심을 중요히 여겼으며, 18세기 프랑스 혁명 전후로 과거의 지식과 전통은 개인 이성의 확장과 사회 진보에 하등 도움이 되지 않고 방해만 하는 지식으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같은 시대를 산 아이작 뉴턴은 “내가 이루어 낸 많은 성과는 거인들의 어깨 위에 올라 서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선조가 쌓아 놓은 업적과 성취를 이용하여 자신만의 과학적 성과를 이룩하였다는 의미다. 역사적 전통과 관점을 중요시한 철학자 가다머(H.G. Gadamer)는 “아무리 개인의 이성이 뛰어나도 고작 100년을 사는 우리가 선조들이 수천 년간 쌓아 온 업적을 단박에 능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실천의 형태로 이루어지는 프로젝트 수업은 미국의 실용주의 철학자 존 듀이의 교육철학에 기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존 듀이는 ‘민주주의와 교육’이라는 책에서 학생들이 교재에 적힌 ‘냉동저장한 지식’만을 아는 것은 제대로 아는 것이 아니며 학생들이 뭔가를 경험하고 가치 체험을 시도함으로써 자신의 사고를 넓히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보았다. 또한 듀이는 소수만의 고등교육을 위한 교재 발굴이나 교과과정은 민주주의 발전에 장애가 된다고 주장하였다.

과거 지식이 새로운 창의력의 바탕

실천을 중히 여기는 프로젝트 수행에서 학생의 연령과 수준에 맞는 충분한 배경지식은 매우 중요할 수밖에 없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원활한 수업이 이루어질 가능성은 높지 않기 때문이다. 비록 영국의 사례지만 배경지식을 안 학생들 그룹이 배경지식이 없던 그룹의 학생들보다 프로젝트 수업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사실에서 알 수 있다. 따라서 배경지식을 경시하는 창의교육은 오히려 평범한 학생들을 수업의 방관자로 전락시킬 가능성이 있다.

현재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한 인재 양성을 위해 배경지식의 암기 위주 시험인 수능의 한계를 지적하고 수능 폐지 논의까지 나오고 있다. 그러나 이는 4차 산업혁명 대비를 가장 잘한다는 중국의 주입식 대학입시나 30명가량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일본의 대학입시를 설명할 수 없다는 한계를 가진다. 수능이 폐지되면 대학별 본고사가 되거나, 아니면 미국처럼 수능이 최소한의 자격시험이 되고 학점은행제 도입으로 대학별로 선택과목과 수준을 지정하는 방안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되면 지방 학교 대부분은 교사 부족으로 대학의 요구를 맞추기 어려워 지방 학생의 대학 진학은 갈수록 어려워질 수 있다.

결론적으로 창의교육이 어떠한 실체적 형태를 가지고 있을 것이라는 주장은 허구의 이데올로기에 가까우며 배경지식의 습득과정이 결코 미래 인재를 양성하는 데 장애물이 되지도 아니다. 학생들은 선조가 쌓아 놓은 지식의 보고를 익힐 때 비로소 새로운 창의력도 나타날 수 있다. 배경지식을 무시한 창의교육은 자칫 엘리트만을 위한 교육으로 흐를 수 있으며 교육의 불평등을 초래할 수 있음을 유념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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