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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났다] 권인숙 "효력 없어지는 낙태죄, 입법 시한 지났지만 폐지만으로도 의미 있어"

입력 2020-12-31 17:24

"합법이든 불법이든 낙태는 계속 해왔습니다. 당장은 낙태가 범죄가 아닌 합법의 상황으로 바뀌었다는 걸 기쁨 속에서 알리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2021년 1월 1일 0시부터 낙태죄가 사라지는 데 대해 권인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같은 소감을 밝혔다.

헌법재판소는 지난해 4월 낙태죄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고 올해 12월 31일까지 법률을 개정할 것을 요구했다. 이후 1년 8개월이 지났지만, 관련법 개정은 이뤄지지 않았고 이에 따라 형법 269조 '부녀가 약물 등 기타 방법으로 낙태한 때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는 규정은 새해부터는 효력을 잃게 된다.

해당 규정이 효력을 잃으면 내년부터는 낙태죄 자체가 사실상 폐지된다. 하지만 국회가 대체입법을 하지 못한 상황에서 낙태 관련법은 '입법 공백'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여성계는 '전면 폐지'를 주장하는 반면 보수·종교계는 '존치'를 주장해 논란이 계속되고 있으며, 의료계 등에서도 관련 규정 미비로 혼란이 발생할 수 있어 우려하고 있다.

권인숙 의원은 10월 낙태죄'를 전면 폐지하고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적극적으로 보장하는 내용의 법안을 발의한 바 있다. 권 의원 외에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이은주 정의당 의원이 '낙태죄 전면 폐지' 법안을 발의했지만 결국 상정도 되지 못한 채로 입법 시한 내에 법안이 통과되지 못했다.

법안은 왜 입법 시한 내에 통과되지 못했을까. 그리고 낙태죄 폐지는 어떤 사회적 의미를 담고 있을까. 이투데이는 29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낙태죄 폐지법'을 발의한 권인숙 의원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이투데이는 29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낙태죄 폐지법'을 발의한 권인숙 의원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신태현 기자 holjjak@)
▲이투데이는 29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낙태죄 폐지법'을 발의한 권인숙 의원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신태현 기자 holjjak@)

"정부안 늦게 나와 논의 늦어져…개정안 상정됐어도 합의 어려웠을 것"

권인숙 의원은 낙태죄 개정안에 대해 "법사위에서 법안을 다루려면 법안을 상정해서 법안소위에서 심사해야 하는데 아직 법안 상정도 돼 있지 않은 상태다. 시한인 31일까지는 입법 가능성이 없다"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입법기관인 국회가 검찰개혁,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법 등에 집중하느라 낙태 관련 개정안 논의에 지지부진했다는 비판이 있으며, 집권당인 더불어민주당에게도 입법 공백의 책임이 있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이에 대해 권 의원은 "지지부진했다기보다는 헌법재판소의 불합치 판결과 관련해서 정부안이 좀 나와야 관련 논의를 할 수가 있는데 정부안이 상대적으로 늦게 나왔다. 그래서 진행이 늦어진 면이 있다"며 "그 이후에는 정부안을 보완하거나 그것과 다른 방향을 제시하는 입법들이 계속 진행이 됐고 12월 초에도 공청회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여당에 대한 지적에 대해서도 "더불어민주당이 적극적이지 않았다고 할 수는 없는 것 같다. 관련 의원들끼리 논의가 많이 있었다"며 "국민의힘에서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에도 못 미치는 극보수적인 안들이 계속 나왔던 상태여서 법안소위에서 (개정안이) 상정됐다고 하더라도 논의가 잘 이뤄지면서 합의될 상황은 아니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그러면서 "어찌 보면 입법 시한이 만료돼서 낙태죄가 더는 실효성이 없는 상태로 가는 게 현재의 국회 지형에서는 그나마 다행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고 덧붙였다.

▲권 의원은 "합법이든 불법이든 낙태는 계속 해왔다"며 "그렇게 계속 있었던 낙태가 범죄의 범주에 더는 속하지 않는다는 것은 어마어마한 차이"라고 말했다. (신태현 기자 holjjak@)
▲권 의원은 "합법이든 불법이든 낙태는 계속 해왔다"며 "그렇게 계속 있었던 낙태가 범죄의 범주에 더는 속하지 않는다는 것은 어마어마한 차이"라고 말했다. (신태현 기자 holjjak@)

"낙태가 더는 범죄가 아니라는 것은 큰 차이…정부안은 문제 있어"

낙태죄 폐지는 어떤 사회적 의미를 담고 있을까. 권인숙 의원은 "합법이든 불법이든 낙태는 계속 해왔다"며 "그렇게 계속 있었던 낙태가 범죄의 범주에 더는 속하지 않는다는 것은 어마어마한 차이"라고 말했다.

권 의원은 "작년에 헌법재판소 판결이 난 후에 더 이상의 관련 기소는 일어나지 않았다. 현장에서의 혼란이 일어날 우려는 별로 없는 상태"라면서도 "여성 자신이 자신의 낙태 행위에 대해서 어떤 식으로 평가하는지와 사회가 낙태를 합법적인 의료 행위로 바라보고, 지지하고, 대응하는 방식은 달라질 것"이라고 평했다.

낙태죄는 사실상 내년부터는 효력을 잃지만, 관련 입법이 되지 않으면 임신중지 약물·건강보험·진료거부 금지 등 안전한 임신중지를 위한 지원책 논의가 '표류'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이에 대해 권 의원은 "(임신중지) 약물과 관련해서는 수입업자·업체들이 원하면 정부가 행정적으로도 빠르게 처리할 수 있다. 현재 낙태 수술 비용이 많이 드는 편인데 보험 부분에서는 추가로 입법화가 돼야 할 것"이라고 답했다.

낙태죄 폐지를 주장하는 여성계에서는 10월 정부가 내놓은 개정안으로 입법이 추진될 수 있다는 우려도 존재한다. 정부안은 형법상 낙태죄를 유지하되 임신 초기인 14주까지만 낙태를 전면 허용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권 의원은 정부안과 관련해 "사문화된 법을 다시 살려낸다면 여성들의 반발이 지금보다 훨씬 더 거세질 것"이라며 사실상 가능성을 부정했다.

권 의원은 정부안이 사실상 사문화된 낙태죄에 대해 범죄의 틀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국가가 여성의 몸에 관한 선택을 규율하고 있는, 범죄라는 사회적인 기준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제일 큰 문제"라며 "기존에 거의 사문화되어 있는 낙태죄를 다시 살려내는 것은 가장 심각한 문제다. 정부가 원하던 방향과는 완전히 다른 형식으로 낙태죄가 다시 살아날 가능성이 크다"고 역설했다.

▲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동 회원들이 10월 8일 서울 종로구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처벌의 시대로 되돌아갈 수 없다' 기자회견을 열고 낙태죄 완전 폐지, 성과 재생산 권리 보장을 촉구하고 있다. (뉴시스)
▲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동 회원들이 10월 8일 서울 종로구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처벌의 시대로 되돌아갈 수 없다' 기자회견을 열고 낙태죄 완전 폐지, 성과 재생산 권리 보장을 촉구하고 있다. (뉴시스)

"낙태는 한 여성의 인생을 건 선택…사회가 범죄라고 얘기할 수 없다"

권인숙 의원은 낙태죄가 전면 폐지돼야 하는 이유에 대해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강조했다. 권 의원은 "낙태가 불법이든 합법이든 해야 하는 사람은 할 수밖에 없다. 어떤 선택을 내렸든 한 여성에게는 전 인생을 건 선택"이라며 "여러 가지 사회·경제적 요소를 고려한 여성의 선택에 대해서 사회가 범죄라고 얘기할 수는 없다. 낙태와 관련해 조언이나 상담을 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범죄로서 처벌의 개념을 유지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주장했다.

권 의원은 "후기(임신 24주 이후) 낙태로 가는 경우는 청소년이거나 정신적으로 굉장히 취약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라며 "결과를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고 주변에 임신 사실을 말하지 못하는 청소년들에게 사회가 낙태를 죄라고 했을 때와 사회가 보호해준다고 얘기해줄 때 어떤 경우가 주변 사람들에게 얘기하고 도움을 받을 확률이 높겠냐"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오히려 사회가 지지해주고 여성의 건강권과 재생산권, 그리고 자기결정권을 인정해 줄 때 여성들이 더 빨리 선택하고 나머지 여성들은 아이의 생명을 잘 지킬 수 있는 환경에서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안정된 사회관계가 가능하다. 낙태가 죄일 때의 여성이 문제를 해결해 낼 수 있는 능력이나 사회적 도움에 있어서 훨씬 취약해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권 의원은 특히 사회에서 당사자가 아닌 신념의 문제로 낙태를 반대하는 주장을 동등하게 다루는 것에 대해 강한 반감을 드러냈다. (신태현 기자 holjjak@)
▲권 의원은 특히 사회에서 당사자가 아닌 신념의 문제로 낙태를 반대하는 주장을 동등하게 다루는 것에 대해 강한 반감을 드러냈다. (신태현 기자 holjjak@)

"신념보다 당사자 목소리가 더욱 중요…동등하게 다뤄선 안 돼"

일부 종교계나 보수 진영에서는 여전히 낙태죄가 존치돼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낙태죄 폐지'에 찬성하는 국회 국민동의청원이 10만 명의 동의를 받아 소관 국회 상임위원회로 넘어간 가운데, '낙태죄 폐지'를 반대하는 국민동의청원도 10만 명의 동의를 얻으면서 28일 소관 국회 상임위원회인 보건복지위와 법제사법위에 넘겨진 바 있다.

이에 대해 권인숙 의원은 "종교나 신념과 관계없이 여성들은 어느 순간 상황에 따라서 낙태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 신념과 가치관으로만 강요할 수 없는 정말 전 인생을 건 선택이기 때문에 그렇다"라며 "생명권을 지켜나가는 방법이 과연 강요와 강제로 해나갈 수 있는 문제인지를 정말 냉정하게 판단해 보라고 얘기하고 싶다"고 강하게 반발했다.

권 의원은 "생명권을 잘 지켜내려면 오히려 여성이 빠르게 낙태를 선택하고, 지키려고 하는 아이에 대해선 지킬 수 있는 여성의 결정권이 우호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사회가 돼야 한다"며 "여성의 의사를 무시하고 건강권이 지켜질 수 없는 범죄의 테두리에서 자기 선택에 대해 어떤 보호도 이뤄지지 않는 사회가 돼서는 안 된다. 생명권에 대해서는 사회가 훨씬 더 적극적인 차원에서 그리고 여성의 삶이 보호되는 차원에서 이해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권 의원은 특히 사회에서 당사자가 아닌 신념의 문제로 낙태를 반대하는 주장을 동등하게 다루는 것에 대해 강한 반감을 드러냈다. 그는 "우리 사회가 낙태 문제에 대한 균형을 잘못 판단하고 있다. 삶을 걸고 이 문제를 바라봐야 하는 당사자들과 단순히 신념의 문제로 이 문제를 바라보는 사람에게 동등한 발언권을 주고 의미를 주는 것은 잘못됐다"며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일단 귀 기울여 듣는 정성이 있어야 한다. 그것이 없으면서 '너희는 이렇게 살아야 마땅해'라고 얘기하는 것은 예의가 없는 사회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낙태죄가 사라진 이후, 우리 사회에 남은 과제는 무엇일까. 권 의원은 "모자보건법상의 건강보험이나 낙태 관련 상담과 관련된 부분들을 적극적으로 바꿔나가야 한다. 약물 도입 문제도 남아있다"며 입법 의지를 드러냈다.

"더는 역사적 퇴행으로 갈 수는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우리 사회가 어떻게 하면 전진해 나갈 수 있을지 그리고 여성들 당사자의 목소리와 건강권이 잘 반영될 수 있을지를 고민해 나가는 게 필요한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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